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이상 Apr 12. 2023

벽이 울린다

조현병 1m 거리에서③ 숨죽이며 나눈 대화들

벽이 울리기 시작했다.


옆집 사람이 만든 울림이다. 

일반적으로 겪는 층간 소음이라기에는 무엇인가로 쳐대는 소리였다.


옆집 사람이 만든 울림이라고 확신한 이유는 벽이 울리는 시점 때문인데,

같이 사는 친구와 내가 대화를 시작하면 울렸다. 신기하게도 티비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사람의 목소리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벽을 쳐대었다. 뭘로 두드렸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구조상 우리 집 거실과 옆집 거실이 아마 맞닿아 있을 것이다.

거실에는 티비가 있다. 동거인과 저녁을 먹으며 티비를 틀어놓고 나누는 농담들이 인생의 낙 중에 하나 인데 그 낙을 실현하면 벽이 울렸다. 


당시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스우파' 때문이다. 

동거인도 나도 멋쟁이들의 춤솜씨에 감탄하며 목요일을 기다렸다. 

'스우파'는 괜찮았고, '스우파'를 보며 떠드는 우리 목소리는 용납되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속삭이며 대화했다. 자극하지 않으려고.

속삭이며 대화하다가 나도 분에 차올랐다. 편히 쉬려고 있는 내 집인데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너무 억울했다. 그 순간이. 나도 울리는 쪽을 향해 손으로 한 번 벽을 쿵 쳐봤다.

더 큰 울림과 횟수가 돌아왔다. 그 분이 맞다. 그 분은 우리가 내는 육성이 너무 거슬리는 것이다.


당시에 모든 것을 안방으로 옮기고 거실을 비워둘까도 생각했었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저 돌아버릴 것 같은 쿵쿵소리만 들리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옆집 사람이 사라지게 된 사건이 있고 나서 검색해 보며 알게 된 것인데.

조현병이 심해지면 주위 사람의 말들이 자신을 향한 욕으로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욕하지말라고 그렇게 벽을 쳐대었나보다.


아, 울리는 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라디오 소리와 티비 소리가 합쳐진 '우웅우우우웅' 하는 소리.


옆집 사람은 현관 문을 늘 절반 이상 열어두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에 내려 우리 집 방향으로 몇 발자국 걸으면 옆집의 저 소리가 울려퍼졌다.

라디오와 티비를 동시에 틀어놓고 불륨을 최대로 높인 저 소리.

방송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이 겹쳐져 무슨 소리인지 알아 들을 수 없는, 스피커가 고장나 울려퍼지는 것 같은 소리.


저 소리들 때문에 엘리베이터에 내리면 늘 공포영화 도입부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뭔 일 날 것 같은 소리를 마주하는게 귀가의 시작이었으니까.


아, 조현병 환자 분들이 증세가 심해지면 환청이 들리게 되고

환청에서 벗어나고자 티비, 라디오를 크게 튼다고 한다.


평화로운 일상에 옆집이 소리로 침범하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하다에 대한 확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