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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상 May 10. 2023

새벽 3시, 우리를 불렀다

조현병 1m 거리에서⑥ 경찰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

9월 초순 즈음으로 기억한다.

여기서부터는 장면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생전에 겪어 본적도, 예상도 못했던 일들이라서 그 장면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다. 

누가 재연하라면 재연을 할 수도 있다.


보통의 사람들이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에 경찰과 마주해 대화할 일이 얼마나 있는지 잘은 모르겠다.

9월 초의 어느 날 새벽, 나는 동네 지구대의 지긋한 경찰 아저씨와 복도에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 경찰 분이 해준 이야기를 포털창에 검색하고 나서야 옆 집 사람이 조현병이구나 라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전문가의 말도, 어떤 증명도 없었지만 '이건 백프로구나' 하는 나 혼자만의 확신.


경찰은 내가 부른 것이 아니다.

단지 내 누군가가 신고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지구대 아저씨에게 들은 이야기다.


시작은 저 사람이 우리 집 현관 문을 두들대겨며 소리를 지른 것이다.

나와 아내는 잠을 깰 수 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깨야 마땅할 만큼 있는 힘껏 두들겼으니까.

눈을 비비며 방 문을 나가보니 소리가 들렸다.


"3호 나와라" "3호 죽여버릴꺼다" "3호 가만두지 않을꺼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저 소리가 반복되었다.  
잠시 얼어붙어있다가 일단 대응하지 말자라고 아내가 이야기했다.

다시 침대로 들어가 말똥해진 눈으로 저 사달이 언제끝나나 하고 심란해져 있을 때 경찰이 왔다.


경찰이 오자 저 사람은 경찰을 향해 울부짖었다.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곧 경찰의 고성과 저 분이 함께 옆 집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를 죽이겠다에서 본인을 살려달라는 것으로 바뀌는 걸 듣고 있으니 이게 뭔 짓거리인가 싶었다.

복도 쪽 방 창 너머로 보니 경찰 한 분이 계시길래 용기를 내서 나가봤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누군가 시끄럽다고 신고한 것이며 

옆집 사람 이야기는 우리 집에서 가스를 내보내어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것.

집에 들어가보니 싱크대를 다 분리해서 걸레를 깔아두었으며 선풍기 몇 대를 싱크대 방향으로 틀고 있다고.

이유는 가스를 막기 위해서라고. 예전에도 이런 일 있었다며 막내 경찰이 달래고 있으니 그냥 들어가서 쉬시라고.


그냥 들어오긴 했는데 쉬어지진 않았다. 

가스, 옆집, 죽인다 등 방금 들은 단어들을 포털 창에 쳐봤다.

조현병 증상의 전형이라며 비슷한 사례가 여러 개 보였다. 이 경우에 해결책은 이사 뿐이라는 글도 여러 개 읽어봤다. 

이미 잠들기는 글렀으니까 검색에 나오는 모든 블로그, 커뮤니티, 지자체에 나오는 비슷한 글을 빠짐 없이 읽었다.


답도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글도, 해결 사례도 없었다. 이사 말고는


그나마 1m 거리에 있던 조현병이, 우리 생활에 큰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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