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망원동 고라니로부터

by Gemma Han

2020년 3월 31일, 화요일.

회사 근처 서교동 여기저기에 벚꽃이 피어있긴 했지만 아직은 쌀랑한 봄날이었다.


나의 마지막 출근길.

집에서 회사까지는 굉장히 가까워서 마을버스로 10분이면 닿는 거리였다.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 하지만 늘 해오던 의식처럼 버스에 올라탔다.


파주 출판단지 사옥에 있던 우리 부서가 서교동 사옥으로 이전해 온 게 2013년.

그날부터 내 통근버스는 출판단지 셔틀버스가 아닌 09번 마을버스가 되었다.

눈이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만삭의 배를 하고 육아휴직을 신청한 날도, 휴가 끝에 복직계를 내러 가는 날에도.




망원동 고라니


30m마다 정류장에 멈춰서는 탓에 영국에서 온 형부의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드는 나의 작고 소중한 통근버스에 마지막 출근을 위해 몸을 실으니 몇 년 전 바로 이 버스 안에서 어떤 남자와 나눈 짧은 대화가 생각났다.


몇 년 전 가을, 그날도 나는 예외 없이 마을버스로 출근 중이었다.

회사에 거의 당도했을 때쯤 뒤쪽에서 스윽 내릴 채비를 하는 그와 마주쳤다.

같은 층을 사용했던 다른 부서의 S과장이었다.


당시 나는 대리였지만, 직급을 떠나 성격 상 복도에서 그를 마주칠 때면 먼저 인사를 건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늘 수줍은 듯 눈을 마주치지 않고 네...라고 하며 내 슬리퍼 앞쪽에 시선을 주던 그였다.

(사실 내가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서일 뿐, 이마저 환청일 확률이 높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남직원들의 성격은 모(극조용) 아니면 도(극쾌활)다.

당연히 이분은 레귤러 집단에 속하는 '모'였다.

그냥 인사만 건네기에는 마을버스 안에서 둘의 거리는 너무 가까웠고, 아직 회사까지의 거리는 약 100m, 3개 정류장이나! 남았다.

나는 회사에서 수많은 '모'들과 상대해 온 짬바대로 대화를 리드해나갔다.


"어, 망원동 사세요?"

"네. 신혼집이 망원동이에요. 하하."


... 하하?


'모'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신혼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니 사뭇 설레었던 걸까.

회사에서의 모습과 달리 일대일에 강한 사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걸까.

아니면 그간 자세히 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본래 웃상인 걸까.


갸우뚱거리는 사이에 버스는 회사 건너편 정류장에 멈춰 섰다.

나란히 내리는 문 계단으로 내려오며 말했다.


"아 그럼 앞으로 이 시간에 마을버스에서 자주 뵙겠네요"

"하하,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거든요."


하하의 답은 이거다 요놈아 하는 듯 그는 아까보다 더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회사 정문으로 겅중겅중 무단횡단을 하며 나를 두고 앞서 뛰어갔다.


그의 뒷모습은 마치 덫에서 풀려난 고라니와 같았다.


퇴사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세상 '모'인 사람을 하루아침에 '도'로 바꿔놓는 걸까.

그때부터 '퇴사'라는 말은 내 안에서 '덫에서 풀려난 고라니'의 이미지와 동기화되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게도 찾아온 퇴사 날,

각 층마다 인사를 다니고 메일을 백업하고 자리를 정리하다 보니 오후 3시가 되었고,

사람들은 울며, 웃으며 내 손에서 세콤 카드를 가져가고 꽃다발과 선물을 안겨주었다.

이날. 끝내 나에게는 고라니 모먼트가 오지 않았다.


겅중겅중은커녕 우물쭈물하며 집에 오는 마을버스에 올라탄 나는 결국 후임이 준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13년 간의 직장 생활.

통번역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로 들어온 이 곳에서 나는 어느덧 차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 다닌 곳을 왜 그만두려고 하는 거냐는 많은 사람들의 물음에 나는 그때마다 떠오르는 이유를 댔다.

(나는 애드리브에 강한 편이다)

내가 생각해도 대답이 중구난방이다 보니 퇴사를 앞둔 어느날 ‘그러니까 나는 왜 사표를 낸 걸까'의 답을 혼자 다이어리에 정리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퇴사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끝까지 사랑해 보고 미워해 보고 열정도 넘치게 담아보고 눈 흘겨도 보았던 곳.

이제는 아무 감정도 남아 있지 않기에, 마치 졸혼하는 중년 부부처럼 자연스레 이 조직에서 졸업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새로운 곳에 감정을 쏟을 준비가 된 망원동 고라니는 이제 겅중겅중 다시 뛸 준비가 되었다고.




10년 전의 나에게


얼마 전, '슬기로운 직장 생활을 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대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다섯 번의 강의를 준비하며 나의 직장 생활에 대해 반추해 보기도 하고 이랬다면, 저랬다면 어땠을까 가정을 세워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 생활 중 가장 부족했고 스스로 안타까웠던 지점에 가닿게 되었다.

바로 멘토의 부재.


멘토는커녕 HR 부서도 없던 회사에서는 마감에 쫓겨 모두가 바쁘게 각자의 일을 할 뿐이었고, 조직 내에서 딱히 관심병사도 아니었던 나는 적당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내 앞을 찍고 가는 발자국이 없는 길을 걷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한 달이라는 마법의 시간이 지나면 월급이 나왔다.

가끔은 마주치는 갈림길에 설 때마다 기준이 없어 방황했지만, 지나고 나서야 갈림길을 지나왔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더 많았다.


멘토를 조직 내에서 찾을 수 없다면 내가 자의로 찾아다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게으름은 세월을 잡아먹는 데 선수라 우물쭈물하다가 나는 과장이 되었고 내 아래 후임이 들어왔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부모가 되어 자식에 열정을 쏟는 것처럼, 나는 내 후임에게 티 나지 않게 최대한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다.

왜 티 나지 않게, 인가 하면 열 살이 넘게 차이가 나는 데다, 당시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고 조금 쫄아있기도 했다.

마치 명절에 훌쩍 큰 조카와 만났을 때 최대한 말실수하지 않으려고 하는 막내 이모처럼.


한마디로 꼰대로 비치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정말 티가 안 났는지 나는 초반에 무관심하고 무뚝뚝한 상사였다고 한다. (실패다)


여하튼 멘토라고 쓰고 오지랖이라 읽는 나의 후임에 대한 애정은 퇴사 후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어서, 결국 얼마 전에는 그 친구에게 알맞은 타사의 채용공고를 주며 이직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성혼율 100%, 이직해 듀오.


아직 직장을 접해보지 않은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내 후임에게 더 알맞은 일자리를 알아봐 주며, 나는 그가 부러웠다.


그러면서 문득 10년 전, 이제 막 대리가 된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이제 막 대리가 된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이 떠오른다.


최대한 꼰대스럽지 않게, (아마 불가능하겠지만)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해 나가보고 싶다.

직장 안에서의 이야기는 물론, 고라니의 삶 - 독립 생활자 - 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도 담아보고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명언을 방패 삼아,

앞으로 스무 편 남짓한 글을 이어 나가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