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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mma Han Jan 29. 2021

인디펜던트 워커, 나를 믿습니까?


작년 봄, 퇴사를 앞두고 있을 때 퍼블리라는 회사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채용 중인 직군에 대한 설명과 함께 퍼블리의 새로운 사업 비전에 대해서도 소개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한국의 링크드인'과 같은 표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 말쯤, 이렇게 기획하던 서비스를 커리어리 라는 이름으로 런칭했더라)


그 채용 공고를 읽으며, 순간 혹했던 것은

채용 중인 직무에 대한 흥미가 아니라 '한국의 링크드인과 같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라는 부분이었다.

'와, 재미있겠다. 그런 서비스를 만들어나가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 정말 재미있겠다'


그러다 조금 비틀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런 서비스를 내가 만들면 어떨까?'


© aleno, 출처 Unsplash


이건 말하자면 내 첫 사업 아이디어의 탄생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소박했던 아이디어는 며칠 만에 감히 시작하지도 못하는 규모로까지 상상력을 뻗친 바람에 아직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다.

누구나 그런 거 있지 않나. 언젠가 꺼낼 가슴속에 묻어둔 사업 아이템... (이라기에는 개발자가 많이 필요해...)


이 사고 과정은, 별 것 아닌 듯 들릴 수 있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프레임의 전환이었다.

여러 사람이 큰 비용을 들여서 하나의 서비스를 런칭한다고 했을 때,

개인이 훨씬 적은 비용을 들여서 비슷한 서비스를 런칭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두 개의 서비스는 각각 다른 규모의 시장에서 어필할 수 있다면 공존할 수도 있고,

혹은 같은 세그먼트에서 경쟁할 수도 있다는 생각.


사실 이런 담대한 생각은 의외의 곳에서 씨앗이 심어졌다.



퇴사 날, 2층에서 5층까지 다니며 인사를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남아 계실 팀장님 얼굴을 봐서 그렇게 했다.

2층에는 영업부가 있었고, 우리 사업부의 영업팀도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건강하세요.

아이들끼리 한번 만나면 좋겠네요.

또 뵈어요.


영업팀 자리를 돌아다니며 적당히 피상적이고 적당히 진심인 인사를 하던 중, 영업팀 에이스 차장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과장님 이직이 아니라 혼자 일하실 거라면서요?"


"네 ㅎㅎ"


"좋은 강의 만들면 다른데 팔지 마시고 저희랑 먼저 얘기해요"


"네? 아, 네 그럼요. ㅎㅎ"


"그동안 좋은 강의 많이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영업팀을 뒤로하고 나오며 역쒸 에이쓰는 에이쓰다라는 생각과 함께,

강의를 만들면 우리와 함께 팔자, 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퇴사 후 당분간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부작사부작 내 콘텐츠를 만들어가야지, 정도의 막연한 계획만 갖고 있던 나보다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영업팀 차장님이 내 앞날을 더욱 원대하게 꿈꿔주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도 묘했다.


그래, 뭐 못할 것 있나.

그날 집에 와서 저널에 큼지막하게 적었던 기억이 난다.


퀄리티 좋은 강의를 만들어서 우리 회사에 팔기.



10년 넘게 교육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워크북을 만들어 왔으니, 웬만한 기업 교육 담당자가 원하는 포맷이나 분량, 퀄리티의 수준은 잘 알고 있다.

B2B 납품단가와 B2C 예상 수익을 따져보며 개발 비용을 산정하는 것도 수없이 해보았다.

그런데 왜 회사에 다니면서 한번도 '이걸 개인이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한번도 안해봤을까.


심지어 사장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을 때조차 비슷한 말을 들었다.

(아니 왜 모두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내 가능성을 얘기하는 건가!)



그렇게 한 번 틔워본 담대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이제는 어떤 회사의 어떤 사업 아이템을 보더라도 '저걸 개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인디펜던트 워커라는 말이 있다.

N잡러, 긱워커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김미경의 리부트>에서 나온 해석이 가장 마음에 든다.


회사에 속하건 속하지 않건 내 가치를 오롯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나를 빌드하는 것.

결국 평생 믿고 갈 자산은 지금 다니는 회사의 명함도, 지금의 연봉도, 쌓아온 회사 내의 커리어도 아닌 ‘나’ 라는 것.


만약 언젠가 다시 직장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내 무기를 단단히 만들어 두어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내가 꿈꾸는 인디펜던트 워커이다.



예전에는 기업이 하던 일을 이제는 개인이 할 수 있다.

(때로는 개인이 하던 일을 기업이 모방한다)



기업도 노션을 쓰고

개인도 노션을 쓴다.


기업도 마케팅을 하고

개인도 마케팅을 한다.


세상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기술과 다양한 플랫폼은 기업에서 잘 자란 새싹들이 나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다.


출발은 개인이 가진 힘, 이 힘을 믿는 것에서 시작이다.

그리고 이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깨닫기에는 너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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