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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mma Han Feb 02. 2021

나도 있다. 판사 세포.

OOO의 힘

얼마 전 완결이 난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

나는 이 웹툰을 참 좋아했다.

주 2회 연재할 때는 수요일과 토요일만을 기다렸고, 중반부터는 유료로 쿠키를 구입해서 미리 보기까지 했으니까.


뭔가 시간을 맞춰놓고 챙겨보는 것은 기대도 되지만 은근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에 심취한 나머지 중독되어버리는 것에 몹시 몸 사리는 편인데, 윰세(유미의 세포들)만큼은 예외였다.


유미의 세포들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겠지만, 유미의 몸과 생각을 구성하는 세포들, 그리고 유미의 성장 이야기이다.

사랑 세포, 감성 세포, 이성 세포 등 참 여러 세포가 나오지만 내 최애는 판사 세포였다.

판사 세포라고 하면 매사에 냉철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판사 세포는 유미 덕후 출신이다.

유미가 어떤 비판받을 행동이나 생각을 해도 이렇게 말한다.

심지어 유미의 다른 세포들마저 모두 유미를 ‘까는’ 순간에도 유일하게 우렁찬 목소리로 외친다.



“유미 무죄!”

무조건이야


자존감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날, 나에게 제일 잔인한 것은 나 자신이다.


그것 봐, 그럴 줄 알았어.

나는 왜 늘 이럴까.


작년에 한 번 자괴감에 몸부림치며 잠 못 드는 밤이 있었다.

나의 그릇 크기도 마음에 들지 않고, 몇 년 전의 실수를 지금도 반복하고 있으며, 주변에 폐를 끼치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에 침대에 누워 컴컴한 천장에 대고 '하아...'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컴컴한 방 속, 더욱 컴컴한 내 마음속에 판사 세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건 어디까지나 과정이라고.

그리고 실패와 실수의 씨앗이라도 단단한 마음에 심긴다면 훗날 괜찮은 열매가 자랄 거라고.


“사실 어쩔 수 없었잖아? Gemma, 무죄!”



© ryanoniel, 출처 Unsplash


나는 그저 판사 세포의 은유가 상상 속에만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땅땅땅 오직 나만을 위한 판결을 내려주는 존재가 있었으면,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난주, 그 존재를 나도 만나게 되었다.


새해가 밝았고, 열심히 1월을 살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고민이 많았다.


이 방향이 맞을까 사실 잘못된 길로 가는 건 아닐까

나의 선택이 맞을까 사실 틀린 선택은 아니었을까

외벌이 중인 남편의 마음을 조금 더 편하게 해 주려면 내가 다시 월급쟁이가 되는 것이 좋을 텐데,


나는 너무 이기적인 걸까.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여전히 나는 직장생활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입사는 조금 더 유예하고 싶었다.

그러다 날 파격적인 조건으로 대우해준다는 회사가 나타났다. 이사 자리를 준다나. (다시 밝히지만 꿈이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기에 그래 밑져야 본전이지 하는 마음 반, 도대체 얼마를 준다는 거야 하는 기대의 마음 반으로 그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예전에 다녔던 회사였다.



'여기였다니'하며 그리운 얼굴들을 만날 생각에 살짝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르려는데, 불현듯 '도망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미 엘리베이터는 도착했고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은 왜 타지 않느냐고 하는데 나는 그곳에 가만히 서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아마 연락을 준 담당자겠지) 전화를 걸어서 오늘 면접에는 가지 않겠다고 얘기한 후 눈을 떴다.


© arstyy, 출처 Unsplash

꿈에서 깨자마자 그 느낌이 너무도 생생해 자리에 앉아서 저널을 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내 무의식은 내 편이구나.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무의식이 아니라 내 의식이 판결을 내렸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당장 이익이 되는 것(많은 돈), 당장 마음이 편한 것(당분간 먹고 살 걱정 없음)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나는 당시에 새해맞이 고민 대잔치 중이었기에 내가 꿈에서 내린 결단이 신기하기도 신선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무의식은 내 편이 되어주었다.

지금 고민하고 있지만 그 자리가 맞다고.

갈팡질팡하지만 큰 방향은 맞게 가고 있다고.




무의식의 소리에 내가 의식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 것은 1년 전부터이다.

별 것 아닌 것에 자극받고 희망찬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하는 이상한 날이 계속되었다.


'내가 대체 왜 이럴까'

그리고 그 탐구 끝에 나는 독립했고 그 무의식의 소리는 다행히 아직 나를 이끌어주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모두 나밖에 모르는 열성적인 팬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조차 밤을 새워 나를 응원하고 오직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존재.

나의 판사 세포.


그리고 그 무의식은 바꿔 말하면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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