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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mma Han Mar 04. 2021

프리랜서의 성패는 비위에 달렸다

그 비위 맞습니다


<커리어 저널링 0기> 가이드 녹음과 운영 등으로 매일이 새로운 경험으로 영글어 가고 있던 때,

조금 결이 다른 두 가지 일이 들어왔다.


하나는 늘 내가 해 오던 것 (내가 이미 잘하는 일)

또 하나는 내가 처음 해보는 것 (내가 아마 잘할 수 있는 일)


각 프로젝트 별로 이틀 정도를 투자했다.


늘 내가 해오던, 내가 이미 잘하는 일은 더 잘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두 배나 걸렸다.

그리고 처음 해 보는 일은,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이틀 만에 프로그램도 (내가 봐도 꽤 괜찮게) 짜 보고 정식으로 제안서도 써 보았다.


아침부터 잔뜩 몰입을 한지라 오후에 메일을 발송하고 나서는 냉장고에 있는 와인을 빼서 마시고 싶을 지경이었다. 스스로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거의 바로 두 업무의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전자의 일은 취소.

후자의 일은 기한 없이 연기되었다.


© janromero, 출처 Unsplash


모든 일은 취소되거나 연기될 수 있다.

작업물이 공중으로 분해되거나 기한 없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이 정도를 가지고 우리는 '실패했다' 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 가지의 작은 거절이 연속으로 온 어젯밤에는 나도 조금은 멍해졌던 것 같다.

속이 상하거나 좌절감이 들거나 하는 것보다 약간 멍한 상태.


조금 많이 자고 일어나 아침에 엄마와 빵을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엄마, 오늘은 나 쉬는 날로 정할 거야. 많이 걷고 많이 읽을 거야. 많이 생산했으니 이제 다시 채워야지"

엄마는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이야기해주었고, 생각해 보니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그때 이미 다 회복이 된 것 같다.



오전에 몇 가지 일을 마치고 오후에는 마음먹은 대로 좋아하는 일본어 팟캐스트를 들으며 만 보를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중고서점에 들러서 책 두 권을 샀다.


걷고 걸으며 생각했다.


프리랜서의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비위의 문제가 아닐까,라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언젠가는 잘 될 거야. 오늘의 열심이 내일의 밥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해.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해'와 같이 들린다.

(어쩌면 미래를 긍정하는 것은,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길 한가운데서 소리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비위가 강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나는 언젠가 잘 될 거야'라는 생각을 이를 꽉 물고 올라오는 것을 참아가며 해야 하는 것이다.


독립과 프리랜서 생활을 거치며 비위가 제법 강해지고 있는 나도 2 연타를 맞은 어젯밤에는 재간이 없었다.


잘 될 거야, 라는 생각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 isa_mau, 출처 Pixabay

그렇지만 그런 날이 있는 것이다.

굳이 뭐 비위를 끌어올릴 필요 있나.


그 전날 나는 사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고 (깊이 잔 게 3시간도 안 될 것이다),

제안서 전달을 마친 후에는 아이를 픽업하러 달려가기 바빴다.

3월을 열자마자 온 몸과 마음이 분주했던 것이다.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나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면 된다.


만보 걷기, 서점 가서 책 구경하기, 그리고 두 권 정도 사 오기, 책 실컷 읽기. 맛있는 커피 한 잔 마시기.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니 3월 달력에 눈이 들어왔다.

3월이다. 나의 마음에 축제가 열리는 3월이다.

커리어저널링 마지막 주인 데다 코칭 세션 개발에 제안서 작성까지 나름 Big week였던 이번 주.

금요일 앙리 마티스 전시회를 예약했다.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제 블로그에 이렇게 다 쓰고 나니, 집 나간 비위가 돌아왔다.



나는 모든 문제보다 크다.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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