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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Jan 18. 2017

[TAI] #8. MoMA: Picabia + GIM

2016.12.28(CHAPTER.3):Art Inspiration 8


Kai Althoff: and then leave me to the common swifts (und dann überlasst mich den Mauerseglern)

1월 22일까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

Kai Althoff(1966~, Germany)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비디오라기 보담도, 말 그대로 다양한 재료를 전방위로 쓰는)이다. 화가, 조각가, 사진가, 판화가, 삽화가, 설치예술가, 음악가(락밴드 Workshop의 리더) 등.

사실 누구인지 몰랐는데 미술관에 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사진(위)처럼 줄을 서 있었고 단지 멤버십이라 기다릴 필요 없이 입장이 가능해서 엣 헴 하고 으쓱대며 입구를 통과했다. 그런데.. 한동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촬영 불가였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검색 가능한 두 장만 아래에.




The Paintings Are Delicate. The Show’s a Shambles. http://nyti.ms/2csARNB


https://www.moma.org/artists/26178?locale=en

Licensing of MoMA images and videos is handled by Art Resource(North America) and Scala Archives (all other geographic locations). All requests should be addressed directly to those agencies, which supply high-resolution digital image files provided to them directly by the Museum.


http://www.contemporaryartdaily.com/2008/11/kai-althoff-at-the-vancouver-art-gallery/



그의 스튜디오를 엿보는 날 것의 느낌으로, 나중에 보니 이 곳에서만 한 시간 넘게 탐험하였다. 보고 또 보아도 새로운 작품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매우 즐겼다.











3월 19일까지 다다이즘을 이끈 프랜시스 피카비아의 단독 회고전에는 2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스스로를 사람들이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여기기를 바랐다고 한다. 더 자세한 것은 위키 참조(https://en.wikipedia.org/wiki/Francis_Picabia).


https://youtu.be/HU0EYA2d4_0

https://youtu.be/xjiIScd0aJw


한 곳에 밀집된 저명한 화가들의 서명을 보기 위해 모여든 관객들. 뒤샹의 필체도 찾았다.


마치 고대 그리스를 연상시키게 하는 기법을 활용한 피카비아. 1937년으로 서명된 것은 피카비아의 친구가 남긴 일종의 농담이다. 실제로는 훨씬 몇 년 전에 완성.




20분가량의 초현실주의 영화 <Entracte, 1924>를 감상했다. 르네 클레어(Rene Clair, French, 1898-1981)의 연출과 프란시스 피카비아가 시나리오를 쓴 35mm 흑백 무성영화(16 fps, 22:44 min)이다.


1920년대 최고로 잘 알려진 아방가르드한 이 영화는 곧 "시네마틱 마스터피스"라는 칭찬을 받았다. 마르셀 뒤샹과 맨 레이의 체스 경기를 포함하여, 어지러운 롤러코스터 장면과 파리 루나 파크를 가로지르는 고속 질주가, 알 수 없는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비연속적인 시퀀스가 연결된다. 익살과 풍자와 해학이 느껴지는 몇몇 장면들이 있었다. 결혼식과 장례식 이후 그곳에 참석한 군중들이 10분이 넘게 쫓아가고 있다.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앞사람들이 쫓아가니 따라가는 것 같고. 이 상황은 마치 죽음을 향해 달리는 우리 모두가 아닌지.

당시 대중을 위해 첫 상영이 되었을 때 이 무성영화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진행되었다. 에릭 사티가 각각의 영화 시퀀스에 맞는 음악을 작곡함으로 해서, "최초로 쇼트 바이 쇼트로 작곡된 영화음악"이라고 감독 르네 클레어가 회상하였다.





좌상단의 그림을 통해 미술치료학적으로 말하자면, 난화(scribbling) 기법이 문득 떠오른다.

물론 피카비아의 드로잉은, 여성의 춤추는 듯한 움직임의 선들이 남아 교차하는 지점들이 흡사 뱀 모양을 이루도록 흑칠 해 놓은 것 같다. 원래 제목은 잊었지만 '다이내믹 쉐도우' 뭐 이런 것으로 붙이고 싶다.

다시, 난화로 돌아가서-

Directive:  의도 없이 선으로 된 낙서를 하다가, 보이는 형상에 칠을 하고, 그것을 오려서(해체) 다른 종이에 붙이면(통합) 색다른 그림이 나오게 된다. 이를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그림 삽입+일화]



우측 하단은 오디오를 들으며 그림을 감상할 수 있어, 음악과 미술의 공감각적인 작품이다. 특히 이 그림은 노골적으로 음악을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이 작품 이외에도 여러 특별한 작품들 하단에 MoMA 웹사이트에서 해당 곡을 들으면서 감상할 수 있게끔 곡의 제목이 쓰여 있다.


미술치료가 음악 요소를 초대하여 어우러지고, 음악치료가 미술적 접근을 차용하여 회기를 이루어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Guided Imagery 혹은 Guided Imagery Music (GIM) 이 중요한 예이다. 1. 눈을 감고 2. 음악을 들으면서(혹은 리더/가이드의 말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3. 명상을 하고 4. 시간이 흐른 후 깨어나/다시 돌아와서 5. 시각화했던 것을, 혹은 느꼈던 것을 미술 작업(주로 그리기 등)으로 나타내 보는 것이다.  


[그림 삽입 1]
이 그림은 호스피스 미술치료를 할 때인데, 언어(및 신체) 의사소통이 매우 어려운(nonverbally-responsive, 그리고 게다가 스페인어 사용자였다) 내담자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내가 당시의 회기를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동료 미술치료사가 슈퍼비전 때 이것을 보더니, "선과 색채들은 음악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너의 환자의 바이탈 사인 같기도 하구나."라고 말해주었다.



이 그림은 동료인 음악치료사가 악기 연주를 하는 동안 필자가 나타내 본 드로잉과 수채화이다.




GIM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옆 매거진 '예술치료/음악치료' 카테고리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다시, 다다이즘의 피카비아로 돌아와서,

그는 유디트나 스핑크스 그리고 그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한 신화적, 종교적  거대화도 많이 그렸다. 진짜 종합 선물세트 격.










http://sdrc.lib.uiowa.edu/dada/digitaldadalib/index.html

다다이즘(영어: dadaism)은 1915년부터 1924년에 걸쳐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실존주의, 반문명, 반전통적인 예술운동이다. 191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해서 독일을 거쳐 중부 유럽으로 퍼져 나갔으며, 1920년과 1923년 사이 프랑스 파리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어원
'다다'라는 명칭은 1916년 2월 후고 발(Huge Ball)이 만든 카바레 볼테르에서 사용되었다. Dada라는 말은 장난감 말에 대한 유아기적 언어라고 하는데, 이것은 특정한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을 의미할 수 있다. <프랑스어 dada는 '목마'를 뜻함> 다다는 20세기 초반 주로 취리히와 뉴욕·베를린·쾰른·파리 및 독일의 하노버 등지에서 활발했던 허무주의적 예술운동으로 이 운동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이 '다다'(또는 다다이즘)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가 여러 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설에 따르면, 1916년 취리히에 후고 발이 운영하는 볼테르 카바레(카페)에서 장 아르프, 리하르트 휠젠베크, 트리스탄 차라, 마르셀 장코, 에미 헤닝스를 비롯한 젊은 예술가들이 모임을 가지곤 했는데 한 번은 프랑스어-독일어 사전에 끼워져 있던 종이 자르는 칼이 우연히 '다다'라는 단어를 가리키고 있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 단어가 정통주의 미학에 반기를 든 자신들의 예술활동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채택했다고 한다.

배경
마르셀 뒤샹의 "샘"

다다는 '어린아이의 장난감 목마'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스위스에 망명 온 작가들이 일으킨 반 문명, 반 합리주의 예술 운동으로, 전쟁의 살육과 파괴에 대한 증오와 냉소를 기본 정신으로 하여, 모든 문화적 가치, 전통적 가치, 이성에 대한 신뢰를 부정하며 예술 형식의 파괴와 부정을 주장했다.

다다는 서구의 문학과 각종 예술성 안에 있던 무정부주의적인 반항심의 형태를 보였다. 이것의 원인은 전통적인 문명이 세계 1차 대전이라는 비극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강한 비판의식이다. 따라서 이들은 기성의 모든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개인의 원초적인 욕구에 충실하려고 했다.

다다이즘 예술가들의 시작은 스위스 취리히에서부터 였다. 1차 세계 대전 중 중립국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스위스는 주변 국가 프랑스, 독일 등과는 달리 반정부 주의적 예술가들을 향한 박해가 적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다다이즘의 중심지는 스위스가 되었다. 이후 대다수의 다다이즘 예술가들은 일명 '거리 예술'이란 거리에서 자신들의 미술과 창작을 보여주는 등의 활동을 재개함으로써 다다이즘의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다다이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 퍼지는 데는 짧은 시간이 걸렸으나 미국에 번지게 된 것은 다다이즘의 대표적인 예술가 후고 발에 의해서였다. 1920년대 중반 휴고 벨은 미국 뉴욕에서 미국 국적의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과 만나 다다이즘의 전파를 주도하였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 Fountain은 현재도 다다이즘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남아있다.

성격
다다는 작가들의 태도였다. 이들은 명성을 오랫동안 유지했고 또 빈번한 미술의 대상이 되었던 것들을 조롱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존의 미술을 파괴했다. 이중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콜라주(Collage), 프로타주(Frottage), 파피에 콜레(Papier Collar), 데페이즈망(depaysment), 자동기술법(automatism)등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내 그림들 사진을 찾아보아야 하는데... 전시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니 시의성에 맞게 어서 올려야겠다.

퇴고를 거치며 거듭 수정과 추가, 또, 문제가 되는 현존 작가들의 작품들 중 어떤 것들은 삭제가 불가피할 것 같다. 텍스트(문자로서가 아닌 컨텐츠, 그리고 문자 그대로의 정의도 포함하는 중의적 표현) 아니 텍스트 안에 이미지마저 끊임없이 변화 가능한 이 e-post publishing의 놀라움이란!!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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