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안 했지만 아이가 둘

by Junebug

결혼에는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새로운 일도 터져주지 못했다.

고려해 볼만한 몇 가지 제안이 있기도 했지만

직전 2년 동안 나를 갈아 넣었던 일에서 어처구니없는 대우를 받으며 마무리했던 터라 인간에 대한

불신이 오랜만에 극대화되어 있었다.


무엇도 쉽게 선택하지 못한 채,

어느덧 마흔이 되었다.

도무지 갈피를 못 잡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기다렸던 것은 아니었다.

꽤 오래 만나 온 남자 친구가 있었지만 그와의 결혼도 확신이 없었으므로 나이가 들었다고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또 주저하는 시간이 길어지던 참이었다.


여름이 곧 오려고 공기가 조금씩 무거워지던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둘이 생겼다.


전부터 삐그덕 대긴 했어도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렇게 살아가겠지 했다.

그런데 만 2세, 4세도 되지 않은 아이 둘을 데리고 동생은 헤어지겠다고 했고

대충 사정을 아는 나는 더 이상 불행하고 싶지 않다는 동생을 말릴 수 없었다.


말로 당장 꺼내진 않았지만 누나인 나와 엄마의 도움을 당연히 바랄 터였다.

모른 채 할 수 없었고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지만 일단 닥치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가족 안에서 늘 당연하게 맡아왔던 장녀의 역할.

그 역할극을 다시 시작했다.


아이들을 낳아준 엄마도 아니고 아이들은 어디까지나 조카일 뿐이라고, 누가 알아줄 것 같냐고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그렇게들 말했다.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아이들의 마음에 구멍이 너무 크게 뚫려 버릴까 걱정이 되었고 그걸 남일 보듯 떨어져 구경할 자신 따위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야 내 마음에도 구멍이 커지지 않을 것이었다.

울면 달래주고, 씻기고, 먹이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놀아주고, 재우고, 수도 없이 그네를 밀어주고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도 울면 무조건 안아주었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온전히 불안함을 내보이는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고 살폈다.

울지 않고 밥만 잘 먹어줘도 기뻤다.

완강하게 타인을 밀어내던 작은 아이가 눈을 맞추고 웃어 줬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파 더 꽉 안아주었다.

울면 같이 울고 웃으면 같이 웃으면서

그렇게 엄마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