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여름도 추억이 될 테니까 (0)
계절 치고는 세상 요란스럽게 등장한다.
‘올여름은 사상 최대 폭염이 예…’
‘매년 더워지는 여름, 올해는 더…’
‘이상기후로 장마 양상이 바뀌… 폭우가 쏟…’
여름이 더욱이나 길게 느껴지는 것은 느낌 탓이 아니다. 박수 칠 때 떠나라고 하는데 우선,
그 누구도 박수 쳐주지 않는데 빨리 지나갈 수가...
생각해보면
봄:
드디어 봄이다! 꽃들이 피고 이제 따뜻해지겠다!
가을: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분다. 단풍 구경에 신이 난 사람들.
겨울:
아이 추워. ‘이번 한파는…’ 그러다가도, 눈 온다! 첫눈! (어느덧 거리에는 눈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여름:
아… 벌써 여름이야…
끝.
박수 쳐주는 사람이 없는데 떠나고 싶어도 떠나기 머쓱하지 않을까.
그래도 생각해 보면 가장 기억 속에 남는 계절이 여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름이었다 라는 뻔하디 뻔한 구절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니깐.
덥고 습하고 찌뿌둥한 여름 속에 있으면 어서 빨리 탈출하고 싶어 지더라도 돌이켜 생각하면 그 땀방울 하나하나가 청량하게만 느껴진다.
여름은 누구에게나 청춘이고 추억이다.
사랑이 익어가는 날이고 낭만이 피어난다.
소나기가 내리고 더위에 밤을 지새운다.
여름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단순히 벚꽃, 단풍, 눈꽃과 같은 자연 풍경이 아니다. (오히려 여름의 짙은 녹음은 감상의 대상에서 예외인듯 싶다.) 저녁 늦게까지 울리는 풀벌레 소리.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방학 중에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가는 길. 오랜만에 보는 손녀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려는 할머니의 뒷모습. 따도 따도 계속 익는 마당의 오이, 토마토, 그리고 떨어질세 없는 냉장고 속 수박, 복숭아, 가끔은 참외. 빙수. 사자마자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모기 쫓으며 굽는 고기. 모기가 왔는 줄도 알면서도 계곡 옆에서 먹는 쌈.
이 모든 것이 한바탕 지나고 나면 언제나 여름은 여름 그 자체로 추억이 되곤 한다.
그런데 막상 여름 한복판에서는 여름이 원수다. 어느 순간부터는 특히 더 여름은 덥고 습하고 피곤하고 지치고 불쾌한, 어서 빨리 지나가야 할 계절이 된 듯하다.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입에 붙은 말이 있다. '덥다.'
어서 치워버리고 싶은 계절이 되었다. 일어나자마자 에어컨을 켜고 더위를 몰아낸다.
태양은 왜 이리도 내리쬐는 것이며 바람은 또 왜 이리 습하고 장마는 왜 오다가 마는 것이고 말다가 또 오는 것인가. 그냥 덥다. 덥고 습하다. 덥고 습하고 땀난다. 왜 덥고 습하지.
여름이니깐.
근데,
잠깐.
혹시 여름을
여름 안에서 느껴본 적이 있나?
마지막으로 여름을 살아본 것이 언제인가?
혹시 기억나는가?
여름 냄새
여름 향기
여름 소리
여름 추억
ㅇㅕ름ㅇㅣ었ㄷr...☆
라고 부를 수 있던 여름.
그래서 여름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너무 길게는 말고 짧게.
아쉬울 때 이별해야 하는 것처럼.
여름이 아쉽게 느껴질 만큼만 짧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