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여름을 문전박대했다

습한 여름도 추억이 될 테니까 수필 (1)

by 윤준
덥다.


알림이 울렸다. 나도 모르게 한 번 알림을 끄고 잔 모양이다. 일어나야 할 시간보다 9분이 더 흐른 뒤였다.

새벽에 바지를 벗어 버렸다. 참을 수 없는 열기는 아니었다. 다만, 꽤나 불쾌한 더위였음은 틀림없다. 마로 만들어진 홑곁 이불은 몸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방의 두 창문은 이미 암막 커튼으로 막힌 상태였음에도 방 안의 공기는 후끈하였다.


일어나자마자 에어컨을 가동한다. 더위로 가득한 방을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하려는 의도다. 물론 5분 정도만 킨다. 아침부터 전기세로 고생할 수는 없는 모양이니까.


머리 위에서 에어컨이 위윙거린다. 선풍기 따위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바람이 시원하지 않을뿐더러 이미 위윙 거리는 에어컨 보다도 훨씬 더 소음이 강하기 때문에 이미 열기에 어지러운 머리에 더 고통만 줄 뿐이다.


아침부터 나의 우열한 위치에 만족한다. 비겁하다. 아니다. 비겁하지 않다. 일어나서 에어컨을 켜고 여름에 냉방을 즐기는 인생. 내가 노력해서 이룬 것도 아닌 그냥 처음부터 타고난 것. 감사할 줄은 알면서도 참을 수는 없는. 이걸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거만하다고 해야 할지. 내가 시원한 만큼 밖은 더 더워진다. 예전에 읽은 책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누군가 웃고 있다면 필시 누군가는 울고 있다고. 분명 누군가 시원하다면 누군가는 여름의 날씨에 찌고 있을 것이다.


여름은 더워야 한다. 여름이 덥지 않다면 어떻게 여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여름을 여름이라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참 웃기다. 여름에 덥다고 일어나서 여름을 비난하고 여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참지도 못하고 지금까지도 에어컨을 켜면서도 빨개 벗지도 못할지언정 윗옷과 아랫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


일본에 갔을 때 지하철 역은 더웠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은 땀에 젖어 있었고 야구를 막 마치고 온 어린아이들의 역동감은 열기 속에서 그 잔열을 유지했다. 다른 학교지만 엇비슷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의 머리카락은 습한 공기에 눅눅해져 있었고 남학생들은 저마다 팔을 걷은 상태였지만 등허리가 흥건하게 살갗에 붙어있었다. 누군가는 부채질을 했고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상생활을 영위했고 누군가는 여름 더위에 푹 찌어 가만히 조용하게 지하철 안에서 쉬고 있었다. 그 누구도 에어컨을 켜라고 싸우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 누구도 쓰러지지 않았다. 더위가 즐겁던 반갑지 않던 일본의 지하철은 여름이었다. 짜증도 열기도 조용함도. 그 모든 것이 여름이었다.


이태리에 갔을 적에도 여름은 존재했다. 찌는 햇살에 서양인들 조차 그늘막을 찾아 헤매는 날씨였음에도 택시를 타고 저마다 창문을 열고 있었고 식당에 들어가도 에어컨보다도 문을 활짝 열어둔 상태였다. 여름 바람이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어컨의 거센 바람이 여름을 몰아낸 상태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받자마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자리에 앉아 수다 떨며 주류를 즐겼다. 에어컨을 요구하고 더위에 인상 쓰며 투덜거리는 것은 우리 무리뿐인 느낌에 나는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다행히도 여름이었기에 얼굴을 붉힐 일이 없을 뿐이었다.


이스탄불도 매 마찬가지였다. 심하면 심했지.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거리에 나와 터키 홍차를 마시며 여름을 맞이했다. 더워도 문은 활짝 열어두었다. 여름을 반기는 듯. 땀 냄새가 진동할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여름이었으니깐. 여름이니깐. 모두가 그러려니 하는 여름. 찌뿌듯함과 짜증이 동반하면서도 아이들은 해가 질 무렵까지 기다렸다가 오후에 간을 보고 나와 웃으며 놀고 지긋하게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여름을 지내는.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여름이었다. 여름이다.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에어컨을 켜고 긴팔을 꺼내 입지 않는다. 여름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하게 여름의 더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아내는 것이다. 여름이니깐.


에어컨을 키는 곳은 분명했다. 백화점. 잘 사는 집. 호텔, 관광객들을 위한. 한국에서는 불분명하다. 돈이 없지 않은 이상 모두가 에어컨을 당연하게 켜니깐. 에어컨을 켜다 못해 여름을 겨울로 만들어버리니깐. 여름에 필요이상으로 지하철은 상쾌하고 건물들은 저마다 창문과 문을 걸어 잠근채 여름을 박대하고 사람들은 집에서 에어컨을 켜고 밖에 나와 왜 이리 매년 더 더워지는지에 대해 논한다. 실외기가 돌아가는 것은 본인의 선택의 일부라는 것을 무시한 채.


내 방의 에어컨은 아직도 돌아간다. 머리가 띵하다. 머리가 띵한 것이 잠을 못자서인지 여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잘만 돌아가고 있다. 몇 년 전에 산 선풍기들은 옷장 속에서 먼지만 쌓일 뿐이다.


여름은 창문 밖에서 나를 보고 있다. 기다린다.


언젠가 여름을 즐긴 적이 있다. 시원한 에어컨 없이도 수박을 먹으면서 여름을 즐긴 적이 있다. 선풍기 앞에서 입을 열고 있었고 반 나체 상태로 시원한 마룻바닥을 찾아 드러누웠으며 그러다가 잠시 졸음에 굴복하기도 하고 더위에 못 이겨 등목욕을 하기도 했다. 선풍기를 틀고 맞 창문을 열고 매미소리에 잠식되기도 하였으며 피서 아닌 피서를 가기도 했다. 에어컨 바람에 젖는 것이 아닌 계곡의 시원함에 스며들었으며 모시옷을 입은 어르신들을 지나치기도 했다. 뉴스에서는 열기를 버티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 했고 나는 열기를 느끼며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그땐 한탄할 수 있는 자격이 조금이나마 있었다. 나 또한 그들보다는 덜 했지만 여름 속에 있었으니깐.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여름 속에 있지 않다.

지금은 여름을 누리고 있다. 누구보다 거만하게. 누구보다 사치스럽게.


여름을 문전박대하며 여름을 비난하고 여름을 밀어낸다.

우리에게 더 이상 여름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죄책감 따위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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