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여름도 추억이 될 테니까 수필 (4)
습한 여름도 추억이 될 테니까 수필 (2)
노랗거나 누렇고 보통은 까끌까끌하거나 딱딱하지만 시원하다
생각해보면 여름은 독특한 계절이다. 노랗거나 누렇거나 까끌까끌하거나 딱딱한 것들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대게 불편함이 친절함이 되는 계절이다.
대나무 돗자리
아무리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고 해도 얇은 틈새들 위에서 자고 나면 둘 중에 하나다. 푹신한 이불보보다 딱딱한 대나무 발에 등이 배기거나 최대한 발가벗고 잔 피부에 틈새들이 낙인되거나. 보통은 낮잠을 자고 일어났던 경우가 대부분이라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았지만 간혹 너무 더운 여름에 그날 밤의 잠을 대나무 돗자리 위에서 청하고 나면 그 다음 날 아침은 다른 날보다도 기지개를 펴는데 더 공을 들여야 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나무 돗자리는 여름 추억 속에서 빠지지 않는다. 누런정도가 심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편이었고 질이 좋으면 까끌까끌하진 않았지만 딱딱한 것은 기본값이었다. 우린 대나무 돗자리를 깔고 위에 앉았고 오랫동안 대나무는 여름 시원한 바람을 머금었고 바람 불지 않는 여름철, 대나무 발 사이사이로 흐르는 시원함을 느끼며 보통은 수박을 먹었다.
돗자리임에도 야외에 깔아둔 적은 없었다. 보통 마룻바닥에 깔곤 했는데 이미 딱딱한 마룻바닥을 두배로 딱딱하게 만들었다. 작은 틈새로 생긴 돗자리의 언덕들을 손가락으로 따라 쓰다듬기도 했으며 보다 어릴 적에는 아무리 더워도 대나무 돗자리로 김밥을 말아달라며 굳이 내가 김밥속이 되기도 했다. 아무리 말아져도 덥지 않았다.
모시이불
침대 위, 지난 밤 어김없이 사투를 벌인 흔적이 가득하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한 것을 보니 확실히 쉬운 전투는 아니었다. 어렴풋이 생각나기도 한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좁은 침대 위에서 내 몸의 온도가 닿지 않은 여름의 더위가 정복하지 않은 구석탱이를 찾아 본능적으로 먼저 머리가 움직였을테고 그 다음에는 팔, 다리, 그리고 나머지 몸둥아리가 이사했을 것이다.
에어컨 파워 냉방을 틀고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이불 속에 (보통은 아주 흰 색인 경우가 많다) 파묻히는 경험을 해보았다면 시원한 따뜻함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사치스러운 더위. 보통은 전기세를 감당할 수 있거나 내 집 전기세를 내지 않는 가령 호텔 같은 공간에서 많이 경험하고 한다. 노랗거나 누렇거나 까끌까끌하거나 딱딱한 것이 없는 곳에서. 모시천을 덥고 자는 순간 전세는 역전된다. 여름을 덥고 자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아침에는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다. 딱딱해서 지난 밤 내가 벌인 사투를 천의 주름에 모두 기록해 놓은채.
여름철 이불은 해가 갈 수록 더 얇아진다. 나는 누런 모시 이불을 덥고 잔다. 까끌까끌해서 다른 계절에는 절대 덥고 자지 않을. 원래의 역할은 이불이 아니었다. 매트리스 커버였다. 하지만 워낙에 왔다리 갔다리 하며 온몸을 쥐 틀었기에 부드럽지 못한 모시 커버에 배기기 일 수 였다. 그러다 보니 첫 몇 여름에는 모시천은 북박이장 신세였다. 분명 시원한줄 알면서도 까끌까끌해서 친절하지 않으니 쳐박아둔 것이었다. 그러다 모시천을 꺼내었다. 더 이상 서양식 이불을 덥고 잘 용기가 나지 않았고 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덥고 자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살갗을 긁어대는 느낌에 온몸의 무게를 모시천 위에 싣고 자는 것이 아닌 살짝 내 몸 위에 걸치는 방향을 택했다. 그렇게 해서 이번 여름 나의 침대는 아주 날씬해졌다. 그 어떤 이불보다도 얇고 누런 모시천 한 겹만이 침대 위에 놓여 여름과 동침을 허락한다.
죽부인
두 눈과 입술을 그려준 적이 있다. 부인인데 몸뚱아리만 있어 얼굴도 모르는 것과 안고 자는 것에 약간의 가책을 느꼈나 보다. 살갗을 맞대고 자는데 서로의 얼굴 정도는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내가 그려준 얼굴을 하고 가만히 내 품속에 안긴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여름을 끌어안고 잠에 들었었다. 그러다가 동침하면 춥다며 한 여름철에 죽부인과 생이별을 한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여름만 되면, 갑자기 찾아왔던 우리의 이별이 생각나곤 한다. 눈물이 나진 않지만 나도 모르게 맞이한 새로운 부인을 켜고 있자면 몽글몽글 생각 나곤 한다. 선풍기만 켜놓고 선풍기의 바람이 사이 사이로 통하던 나의 죽부인. 새로운 부인은 너무 새침하고 값비싸게 굴어서 잠에 들 시간이면 각방을 쓰곤 한다. 노랗고 누래서 못생기고 끌어 안고 있자면 딱딱하긴 했지만 전부인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앞에서는 시원한 척 하지만 뒷끝은 아주 뜨거운 현부인와는 달리 나의 죽부인은 최소한 성격 정도는 아주 시원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