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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준 Sep 24. 2020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16

산림도 정원 관리하듯 체계적인 일본

2019.4.3 (수)


아침 7시, 알람 소리에 잠이 깨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푹 잔다고 잤는데, 몸이 개운하기는커녕 오히려 살짝 몸살 기운이 돌아 바로 일어나지는 않고 이불속에 좀 더 누워 있었다. 


지난 아이라-다츠몬지자카-사카모토 쿠로즈 츠보바타케-코쿠보역을 돌고 온 기리시마 1차 라이딩에 이어, 오늘은 가고시마역에서 기리시마진구역(霧島神宮駅)까지 기차점프를 한 후, 시계 반대방향으로 기리시마 진구(霧島神宮), 기리시마 온천시장(霧島温泉市場), 시오시타시온천 료마공원(塩浸温泉 龍馬公園) 등을 둘러보고 코쿠보역으로 가서 다시 기차점프로 가고시마 중앙역으로 돌아오는 '기리시마 2차 라이딩'을 다녀올 예정이다.  

전체 예상 라이딩 거리는 약 50km로, 기리시마진구역에서 기리시마 온천시장까지 20km 정도 되는 언덕길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은 대부분 내리막길이라 체력적으로 큰 부담은 없을 거 같았지만, 그래도 출발 전 컨디션이 좋지 않고 도착해서도 시작부터 오르막이라, 오늘 쉽지 않은 라이딩이 되겠구나라는 느낌이 밀려왔다.


가고시마에서 기리시마진구역까지 가는 기차는 니포라인과 기리시마라인 두 개가 있는데, 니포라인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정차하는 역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반대로 기리시마라인은 가격이 비싼 대신 정차 역이 적어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게 걸렸다. 오전 출발 기차는 9시 출발 니포라인과 10시와 12시에 출발하는 기리시마라인 총 3편이 있었다. 니포라인을 타기에는 준비 시간이 부족해 10시와 12시 기리사미라인 중 하나를 타야 했는데, 두 열차 간 가격 차이가 없어 이왕 같은 가격인 거면 방에서 좀 더 쉬면서 여유 있게 준비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12시 기차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나갈 채비를 마친 후 조금 여유 있게 11시쯤에 호텔을 나섰다. 기차 탑승은 텐몬칸에서 북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는 가고시마역(鹿児島駅)에서 하기로 하였다. 가고시마중앙역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이 곳에 정차했다가 기리시마 방향으로 가는 거라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상관없는 것도 있고, 역 이름에서 가고시마중앙역이 생기기 이전에 가고시마의 관문 역할을 했던 곳인 거 같은 느낌이 들어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조금 세긴 했으나 날도 맑고 온도도 적당히 따뜻해 라이딩하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10분 남짓 달려 가고시마역 앞에 도착하였다. 명색이 '가고시마역'이고 트램 종착지이기도 해 주변이 복잡하고 번화할 줄 알았는데, 주변 건물들은 엄청 오래됐고 중앙역 쪽으로 상권이 이동해서 그런지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고시마역 건물은 노후 때문인지 보수 공사 중이라 외관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공사 펜스 사이로 보이는 주변 시설물에서 이 곳의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자전거를 분해 패킹할 곳이 마땅치 않아 역사 입구 한 켠에서 작업을 한 후 플랫폼으로 이동하였다. 벤치에 앉아서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백인 친구가 한 명 보이길래 그동안 사람과의 대화가 고팠는지 반가운 마음에 쓱 가서 말을 걸어보았다. 러시아에서 온 친구로 도쿄-오사카-가고시마 쪽을 돌고 오늘은 미야자키 쪽으로 넘어간다고 하는데, 여행 계획을 짜 놓고 움직이는 건 아니고, 여행 책자를 보다가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기면 그때그때 이동하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서양인들의 여행 스타일은 뭔가 좀 더 자유롭고 오픈되어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같이 앉아서 가는 건 서로 부담될 거 같아, 좋은 여행 하라고 인사를 건넨 후 각자 다른 열차 칸에 탑승하였다.  


자전거를 출입구 쪽에 세워 놓고 좌석으로 이동하였다. 지난번 코쿠보에서 가고시마로 올 때 탔던 기차와는 달리 이번에 탄 '기리시마 12 limited express Miyazaki' 기차는 역시 가격이 비싼 만큼 좌석도 편하고 수하물 선반과 휴게시설도 있어 안락하였다. 

객실 안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중년 아저씨들이 자리에서 벤또(도시락)를 드시고 있었는데, '에끼벤또'의 나라답게 기차를 타면 벤또를 먹어야 한다는 종교의식 같은 것이 있는지, 하나같이 벤또를 먹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뭔가 공식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처럼 보여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가고시마역을 출발한 열차는 하야토역(隼人駅)을 지나 코쿠보역에 도착하였다. 한 번 와봤던 곳이라고 내에서 역을 바라보니 뭔가 반가우면서도, 오늘 라이딩의 마지막 지점으로 다시 올 곳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가짐이 결연해졌다. 

코쿠보역을 지난 후 기리시마진구역까지는 기차도 올라가기에 헉헉대는 계속되는 경사길이었다. 괜히 호기를 부려 자전거로 코쿠보역에서 출발해 기리시마 진구까지 이동했더라면 정말 고생했겠다 싶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역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가고시마에서 출발한 지 40여분 정도 지난 후에 마침내 기리시마진구역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화창했으나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바람이 꽤 차 쌀쌀하였다. 역 내에서 자전거를 조립하고 출발 채비를 마치니 오후 1시, 아침에 샌드위치 하나밖에 못 먹어 살짝 배고픈 것도 있고, 역 인근에 쿠로부타노야카타(黒豚の館)라고 하는 흑돼지 돈카츠 집을 찾아놓은 것도 있고 해서,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식사부터 하기로 하였다. 가게 위치 확인을 위해 구글맵에서 검색을 했는데, 이게 왠 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수요일은 휴업인 것이었다. 수요일 휴업은 생각도 못했었는데 어찌 됐건 내 불찰이니 아쉽지만, 그리고 기리시마 진구와 반대 방향에 있는 곳이라 오히려 기리시마 진구까지 거리를 단축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며, 주변 편의점에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구글맵에서 역 주변에 편의점이 어디 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많던 편의점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기리시마진구역이 산골 오지도 아니고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인데 어떻게 편의점 하나가 없는지 난감함이 밀려오는 동시에, 가뜩이나 보급품은 무거우니 출발 전에 사지 말고 현장에서 해결하는 걸로 전략을 바꾼 터라 당장 먹을 것도 없다는 생각에 허기졌던 배가 갑자기 더 배고프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동네 슈퍼를 찾아 헤매는 것도 아닌 거 같아, 일단은 기리시마 진구에 가면 뭐라도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기리시마 진구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기리시마 진구까지 거리는 약 7km로, 예상했던 대로 몸이 안 풀린 것도 있고, 지속적인 오르막에 맞바람도 강한 편이라 라이딩이 쉽진 않았다.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기리시마 산등성이 자태를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힘을 내야 할 거 같은 사명감이 용솟음치는 거 같았다. 우리나라에도 단군신화가 있는 거처럼, 기리시마 산(다카치호미네)은 일본 천손강림 신화의 주인공인 니니기노 미코토라는 자가 하늘에서 바로 내려와 도착한 곳이라고 하는데, 그 얘기를 떠올리니 왠지 여기서 무너지면 단군신화가 지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헉헉대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저 앞에 카센터 인가 하고 자세히 봤더니 편의점이 하나 있었다. A-mart라는 편의점이었는데, 체인이 아닌 개인 편의점이라 아까 구글맵에서 못 봤었던 건지, 마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반가운 마음에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에너지 젤리와 초콜렛, 물 등 필요한 것들을 구매한 후 잠시 쉬면서 보급을 하였다.


다시 기리시마 진구를 향해 출발하였다. 영양 보충으로 인해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안정이 돼서 그런 것일까, 편의점에서 기리시마 진구 입구까지는 좀 더 경사가 있는 길이었음에도 기분 상쾌하게 올라와 진구 입구에 도착하였다. 


기리시마 진구는 일본 천손강림 신화의 주인공인 니니기노 미코토를 모셔 놓은 신사인데, 그래서인지 입구에 있는 도리이도 뒤에 있는 기리시마 산과 함께 뭔가 일반 신사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위엄을 내뿜고 있었다. 

입구 계단 아래 주변에 자전거를 주차해놓고, 신사 안쪽으로 쭉 걸어 들어갔다. 안쪽에는 중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주중임에도 현지 일본인들도 꽤 많이 보였는데 신사 내에서의 모습들이 몹시 경건해 보였다. 신사 앞에서 엄숙히 참배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녀와 같이 온 부모님들은 자녀의 건강과 성공을, 혼자 온 사람들은 본인과 주변인들의 번창을 빌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는 참배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여행을 무탈하게 목표했던 바를 잘 수행하고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보았다. 오랜 시간 이 곳에 있진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나 자신을 겸허하게 해 주었던 좋은 기운을 안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 출발 채비를 하였다. 


기리시마 진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기리시마 온천마을로 향하였다. 나뭇잎도 푸릇하고 벚꽃뿐만 아니라 길가에 노란 꽃들도 활짝 피어있어, 이제는 진짜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속되는 언덕길에 숨이 가빠올랐지만, 봄의 따사로움과 자연 내음을 맡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힘이 솟았다. 

2-3km 정도 오르막길을 올랐으려나, 도로 옆에 서있던 나무와 풀들이 걷히자 무심코 고개를 왼쪽 편으로 돌렸는데, 그때 눈 앞에 펼쳐진 전경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고지대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기리시마 지역과 저 멀리 사쿠라지마와 긴코만 바다 전경이 너무 멋있어서 마치 언덕을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느껴졌다.


잠시 멈춰 전경을 감상하고 있었던 곳이 마침 기리시마 신화마(神話の里) 입구였는데, 좀 더 높은 곳에서 보는 전경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잠시 쉬어갈 겸 공원 주차장 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주차장에서 주변 전경을 둘러보았다. 도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공원 뒤쪽에 신비롭게 자리 잡고 있는 가리시마 산과 좀 더 훤히 내려다 보이는 사쿠라지마 쪽 뷰가 환상적이라 계속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좀 더 머무르면서 주변 전경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 상 오래 있을 순 없을 거 같아 아름다운 전경을 가슴속에 잘 간직한 채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 온천마을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도로를 따라 이동 중에 보이는 산림의 모습이 오늘따라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 지란 라이딩 때도 그렇고 이치끼쿠시쿠노 라이딩 때도 느꼈던 거지만, 일본의 산림에는 나무들이 빈틈없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같은 산 안에서도 구역 별로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어찌 보면 인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놀리는 땅 없이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도시처럼, 산림도 마치 집 안 정원 조경하는 듯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도 그냥 심어놓고 끝이 아니라 좀 더 체계적인 산림 관리가 필요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로관리부터 도시 계획, 산림관리까지 우리가 인프라 면에서 일본으로부터 벤치마킹해야 할 게 아직까지는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구불구불한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한참 달렸다. 저 멀리 여기저기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도 보이고 코를 찌르는 유황냄새가 자욱한 것을 보니 기리시마 온천마을에 거의 다 도착한 거 같았다. 기리시마가 온천으로 유명하다던데, 마을 입구 주변에는 그 말을 증명이라고 하듯 꽤 큰 규모의 온천 숙박 시설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다. 

기리시마에서 온천 숙박하는 걸로 일정을 짤 걸 그랬나라는 후회가 들 정도로 휴양지답게 주변 분위기나 유황 냄새가 사람을 기분 좋고 편안하게 해 주었다. 아쉽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온천시장 안에 있는 족욕탕에 잠시 발을 담갔다가, 이 곳의 명물이라고 하는 온천 증기로 찐 삶은 계란도 먹으면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였다.  


자전거를 주차한 후 삶은 계란과 만쥬를 사서 족욕탕에 자리를 잡았다. 계란을 하나 까먹으려고 집어 들었는데 얼마나 뜨거운 지 껍질을 까기가 힘들 정도라 기리시마 온천수 열이 장난이 아니구나를 직감할 수 있었다. 

보급도 했고 어느 정도 쉬었으니 다시 출발하려고 주차한 곳으로 이동하였다. 내 자전거 옆에 투어링 자전거가 주차되어 있길래 누구 것이지, 현지인 것인가, 저걸로 이 언덕을 올랐으면 꽤 힘들었을 텐데 하면서 출발 채비를 하고 있는데 웬 백인 여자가 옆으로 쓱 오는 것이었다. 백인 여자가 일본에서 혼자 자전거 투어링이라니 신기한 마음에 인사를 건네 보았는데, 프랑스에서 왔고 일본에서 3달 정도 있으면서 자전거로 규슈 지역 1달, 시코쿠 지역 1달, 교토 지역 1달을 돌면서 숙영을 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3달 동안 여자 혼자 라이딩하면서 숙영을 하겠다는 것도 스케일이 남달라 대단하다 싶었고, 직장인 같았는데 3달이라는 긴 기간 동안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그들의 문화도 뭔가 부러워 이제는 우리의 휴가 문화도 슬슬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녀의 무사 완주를 기원하며 다음 목적지인 미야마 콘셀(みやまコンセール)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기리시마 온천시장부터는 지속적인 내리막 길이었다. 편안하게 속도감을 즐기며 4km 정도를 내려온 후 미야마 콘셀에 도착하였다. 미야마 콘셀은 풍부한 어쿠스틱 사운드의 울림을 체험할 수 있는 음악 전문 홀로, 연중 많은 콘서트가 열리고 여름에는 2주 간 기리시마 국제 음악제의 메인 회장으로 사용되는 곳이라고 한다. 주중 오후 시간대여서 그런지 건물이 잠겨 있어 안을 둘러볼 순 없었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에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음악 전문 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있었고, 우리도 지역 곳곳에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좀 더 확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음 목적지인 시오히타시온천 료마공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미야마콘셀부터 시오히타시온천 료마공원까지는 12km 정도 되는 내리막 코스였는데, 온천 시장을 기리시마 진구 쪽이 아닌 이쪽에서 올라왔더라면 극기훈련을 할 뻔했을 정도로 경사도가 엄청 심하였다. 내리막이라 이동은 편했지만, 계속 바람을 맞으며 내려왔던 것도 있고 길가에 빼곡히 높게 들어선 나무 때문에 응달 속을 달려서 그런지 체온이 떨어져 내려오는 내내 몸이 살짝 으스스거렸다. 


20여분 정도 내려온 끝에 시오히타시온천 료마공원에 도착하였다. 시오시타시온천은 에도시대 무사로 대정봉환을 주도해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사카모토 료마와 그의 부인이 그들의 신혼여행 중 방문한 온천이라고 한다. 온천장 주변을 둘러보고, 온천장 반대편에 위치한 사카모토 료마 부부 동상으로 이동해 동상을 바라보았다. 사카모토 료마,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길래 그가 신혼여행 중에 방문했던 온천이라고 이 곳에 공원과 동상이 생길 정도일까, 그처럼 나라를 바꿀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세상의 흐름을 읽고 주변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되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겨 보았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다. 더 어둡고 날이 차가워지기 전에 오늘 라이딩의 종착지인 코쿠보역까지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 페달링에 힘을 가하였다. 코쿠보역까지 거리는 15km, 평지이긴 했으나 맞바람이 심해 라이딩이 쉽진 않았지만, 지나치는 주변 시골 동네 건물과 주택들을 구경하면서 1시간 정도 달린 끝에 코쿠보역에 도착하였다.  


두 번째 방문이라고 역 입구며 건물 내 대합실이 낯설지 않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패킹한 자전거를 들고 대합실에서 잠깐 대기하다가 가고시마중앙역으로 향하는 6시 반 기차를 타기 위해 승강장으로 이동하였다. 이번 기차는 지하철 형태의 좌석이라 차량 맨 끝 구석 공간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나도 바로 옆 자리에 앉았다. 기차 문이 닫히고 출발하자, 오늘 라이딩이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아니면 실내가 따뜻해서 몸이 녹았는지 다행히 자전거를 잘 붙잡고 있어 넘어뜨리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곯아떨어져 중앙역까지 졸면서 오게 되었다. 


중앙역에 도착 후 자전거를 다시 조립하고 역 밖으로 나오니, 바람도 세게 불고 일교차가 심한 지 날도 쌀쌀하였다. 밖에 오래 있다 가는 몸살 날 거 같아, 빨리 호텔로 복귀해서 뜨거운 물에 샤워하면서 몸을 녹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방에 도착하였다. 씻고 나오니 몸이 노곤 노곤해져 나가서 뭘 먹기는 귀찮고 해서 편의점에서 맥주와 식사가 될 만한 안주를 사 와 방에서 먹기로 하였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며 오늘의 노고도 풀고 앞으로 남은 일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내일이면 벌써 17일 차라니, 전체 일정 중에 마지막 타네가시마와 야쿠시마 일정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가고시마 '본토'에서의 일정은 얼마 남지 않게 돼, 남은 기간 동안 일정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단 내일은 가고시마에 온 뒤로 처음으로 미나미사쓰마-카사사-이부스키를 돌고 오는 원정 1박 라이딩을 할 예정이다. 당일치기 라이딩 때보다 챙겨할 짐도 많고 이틀 내내 라이딩할 계획이라, 내일을 위해 어느 정도 미리 준비를 해놓은 후, 컨디션 관리 차 늦지 않게 잠에 들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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