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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icity Mar 31. 2022

빅퀘스천 - 우리는 왜 정의를 기대하는가

빅퀘스천(김대식) – 제 2장 우리는 왜 정의를 기대하는가 (2015.4.22)


* 너무나 이성적인 과학자가 신과 우주에 던지는 질문


뇌과학자 김대식이 누구나 살면서 한번씩은 해보았을 빅퀘스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학자이지만 어느 인문학자보다 더 심도 있게 서양의 철학, 역사, 문학을 공부했던 그는 저 먼 고대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질문에 대한 다양한 고찰과 고증을 덧붙여 설명한다.


글 전체에 흐르는 기조는 절대성보다는 상대성이다. 인류의 생각은너무나 쉽게 잘 바뀌고 저 멀리 절대적 진리인 이데아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누구나 중요하다 이야기하지만 모두가 다르게 생각하는 "정의"에 대해 그는 먼저 "진실"의 존재에 질문을 던진다. 진실은 상황마다 사회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다르다. 라쇼몽의 많은 증인들처럼, 오!수정의 남녀의 시각처럼. 이렇게 진실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꿈꾸는“민주주의”도, 민주주의를통해 구현하려는 “정의”의 정의가 같을 수 없다.


그럼 정의를 위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일리아드'가 아가멤논의 불공정한 전리품의 분배로 아킬레우스가 분노하는 데서 시작되듯 사람 사이의 명예와 신의가 중요한 덕목이었던 그리스에서 "정의의 실현"이란 "공정한 전리품의 분배"였다. 결국 모두가 동의할만한 원칙 "정의"는 어떻게 "분배"하는가에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어떻게 나눌 것인가, 그 사람이 얼마만큼의 기여를 해서, 얼마만큼의 몫을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공정하게 합의하고 그 내용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정의”라고 한다면, 지금이 세상과 사회의 기준을 보면 요원하기만 한듯하다. 오늘날의 세상의"분배"보다는 고대의 "분배"가 더더욱 "정의"롭게 느껴진다.


정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많은 질문을 하지만 명쾌한 답은 없다. 이러한커다란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정의의기준과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해왔는지 고찰해보고, 지금의 나의 기준을 검토할 수밖에.


고민의 시작은 역사, 철학, 고대신화의 스토리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결론은 이성적이고 과학적이고 차가운 물리학적 원리에 의해 내려진다. 그리고 그 결론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고대 신화 속에서 사람들이 믿어왔던 관습이나 생각에 따를 것인지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자가 바보가 되는 세상에 이 천재의 질문은 반갑다. 하지만 저자가 가진 방대한 지식에 감탄할 수는 있어도, 결국 우리는우주가 만든 하나의 먼지와 같다는 결론이라는 그의 차가운 이성적 결과에 감동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고독한 시대에 이런커다란 질문을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고대의 사람들이 별을 보고상상의 나래를 펼쳤듯, 물리적 법칙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과학보다는 별에 자신의 운명을 점치고 의지하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이라 믿으며, 질문을 계속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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