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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icity Mar 31. 2022

대안의 그녀

123~124p

헤, 귀엽네. 눈이 다무라씨를 닮았구나.아기 낳을 때 무섭지 않았어?

휴대전화 액정을 들여다본채로아오이가 묻는다.

“무서워?”

“난 무서워. 무섭다는건 대단한거야. 난, 어른이 되어서 제대로 혼자서 돈도 벌고 있고 영업에도 뛰어들고훨씬 나이 많은 남자와 싸워서 이길 자신도 있어. 그런데 아이를 낳는 것이 무섭다니, 뭐라고 할까. 좀 한심해. 하지만자기가 낳은 아이가 성장해서 내가 모르는 일로 절망하거나 상처받을 걸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무서워.내가 부모님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그런 아이였거든. 나같은 아이가 나오면 난 정말 싫을것 같아.” 아오이는 웃으면서 말하고, 사요코에게 휴대전화를돌려준다. ….

“아이는 정말로 나처럼 생각할 때가 있어.나도 나 같은 아이가 아니라 좀더 밝고 뭐라고 할까 산뜻한 아이로 자라주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우리애는 슬플 정도로 나랑 닮았어. 집 안에서는 명랑하지만나가서는 아무 말도 못하는게. 유아원에 다닌 지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친구도 사귀지 못한 것 같아. 내 어렸을 때를 보는 것 같다니까, 나도 그랬거든. 그런건 무섭다기보다, 뭐랄까, 침울해지는일이지.”….

“알 것 같아, 그 맘. 나에게는 아이가 없지만 결국 우리 세대는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해 공포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

“친구가 없으면 세상이 끝나기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친구가 많은 아이는 밝은 아이고, 친구가 없는 아이는 어두운 애. 어두운 애는 좋지 않은 애. 그런 식으로 여겨지잖아. 나도 줄곧 그랬어.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 세대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지. 누구에게나 공통된 개념일지도.”…


127p“난 말이지, 주위에아이가 없으니까 성장 과정에 미치는 영향이라던가 하는 건 잘 모르지만, 혼자 있는게 무서워서 많은 친구가있는 것 보다는, 혼자 있어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무언가를 찾는 편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


162p하지만 나나코의 진짜 모습은 그 어느것도 아니고, 오늘 자신이 느낀 깊고 깊은 텅 빈 굴이야말로 진정한 그녀가 아닐까 아오이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알았어 돌아가지 말자, 나나코”


216p그 집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어. 할머니는 암에 걸려서 입원했는데 그때,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어. 방도 빨리 나눠서 기쁜 듯이 썼어. 오른쪽 다다미방은 여동생 방으로, 왼쪽 방은 나와 엄마가, 그리고 부엌 쪽이 아빠 방으로 말이야, 바보처럼. 할머니의 서랍장이나 할머니가 만든 매실주나 쌀겨된장 같은것들을 아무 미련 없이 갖다버렸어.

할머니가 점점 야위어가는데그걸 보는 것이 무서워서 병원에도 일체 가지 않았어. 돌아가셨다는 소릴 들었을때에는 왠지 안심이 되기도했어. 그때 아, 내가 이렇게 잔인한 인간이구나 하는생각을 했어. 냉정하고 잔인해서 사람에 대한 정 같은것이 전혀 없구나 하고.


219p“계속 이동을 했는데도 어디에도 갈 수 없을 것같은 느낌이 들어” “더 빨리 멀리 가고 싶은데” “훨씬멀리 가고 싶어” 무표정한 목소리로 나나코는 아오이의 말을 반복했다 “여기에서 손을 잡고 동시에 날아볼까?” 아오이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기 전에, 그렇게 하면 정말로 어디에가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함이 없는 곳, 러브호텔을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곳, 자금책을 궁리하지 않아도 되는 곳, 뭐든잘 되는 그런 곳. 나나코와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지금도 아오이는믿고 있다.


291p“또 만날 수 있는거지” “당연한 것 아냐? 우주로 이사를 가는 것도 아니고” 나나코는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의외로 사람은 참 강해” 하며 아오이를 보고 작게 웃는다.


324p그 후. 나나코가하던 말의 의미를 아오이는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이런 곳에 나의 소중한 것은 없다. 싫다면 관여하지 않으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강한 척하는 것도 허세도 아닌, 단순한 사실이었다.  


327p 하지만 아무리해도 아오이는 그들에게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분위기에맞춰서 웃거나 화를 내거나 하며

연애 흉내를 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넘어 상대가 다가오면아오이는 서둘러 장벽을 쳤다.


333p 믿었던 것이다. 사람은 친절하다고,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354p 그녀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유치원의 행사나 담당 선생님에 대한 이런저런 애기들을 정신없이 주고받는다. 사요코는 이야기에 끼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하는 편이 오히려 마음이편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적당히 맞장구를 치는 편이 편했다.


355p 생명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얼굴이 동그란 렌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356p 무엇을 위해 우리는 나이를 먹는 것이까. 큰 창밖, 잎을 떨군 은행나무 가로수를 바라보며 사요코는 멍하니 생각을 했다. 유치원에간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에 갖는 티타임을 바쁘다는 핑계로 몇 차례 거절하면, 어짜피 같은 유치원에아이를 보내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 그녀들은 더 이상 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자신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일로 상처를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358p 무엇을 위해 나이를 먹는 것일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번거롭게 느껴질 때, 편리하게 생활 속으로 도망가기 위해서인가.


360p 사요코는 순간, 이해했다.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금세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아오이도 또 다른 여자 아이도 두려웠던 것이다. 같은 것을 보고있던 사앧가 다른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전혀 다른 것을 보고 변해버렸을 상대에게 연락을하기가 무서웠을 것이다 ‘친구, 아직도 없니’라는 소리를 듣는게 무서웠을 것이다.


369p 왜 우리가 나이를 먹는지. 생활 속으로 도망가서 문을 닫아버리기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만남을 선택하기위해서다. 선택한 장소를 향해 자신의 발을 내딛기 위해서다.


제 1장 127p

나는 말이야 이 아이가 처음일어서는 순간도, 처음으로 말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어. 항상스쿨워크 당번이 알려줘서 알았지. 여기밖에 있을 데가 없어서 여기에 왔고, 나 역시 여기서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여기에 있다간 이 아이가성장해 가는 모습을 하나도 볼 수 없겠구나 싶어서 서글퍼져.

….

같은 날 같은 차를 타고함께 이곳에 온 구미와는 왠지 통하는 데가 있었다. 구미 역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주체성 없는 다른멤버들처럼 행동하지마 우리 둘만 있게 되면 속에 있는 것들을 털어놓는 일이 종종 있었다. 홈 내부에서는출신에 관한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제가 있었지만 우리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에서 자랐고 지금까지 어떤 일을하며 살아왔는지 시간 날 때마다 얘기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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