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함에서 정신승리로
20대
홍상수의 영화를 챙겨보는 편이었다.
보다보면 영화인지 다큐인지
극인지 사실인지 헷갈리는 영화들.
숨기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진짜 사람의 얼굴들.
처음에는 극사실주의에 맞아 맞아 웃고 즐겼는데
언제부턴가 현실이 지지리도 궁상맞은데
돈 주고 쉬러 간 영화관에서 커다란 화면으로
일상에 덕지덕지 묻은 찌질함을 보는 게 힘들어졌다.
그렇게 '다른나라'에서 홍상수와 이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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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바래지고 인생의 맛을 차츰 알아가는 시절
이 시대 정신승리의 바이블
장기하를 만났다.
노래를 듣다 보면 힘이 난다
웃다가 눈물이 날 것 같다.
궁상맞음과 찌질함이 노랫말에 있지만
홍상수와는 너무 다른 결이다
원래 사람이 그렇다는 걸 알겠고
그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정신승리"해야는지
대안까지 노랫말에 담아낸다
온갖 정보에 사람에 시달렸을 때
한바탕 노래를 듣고 나면
이보다 후련할 수 없다
장기하 노래보다
더 좋은 정신상담의는 없다
한글의 말맛과 리듬감도 신난다
홍상수가 찌질함에서 끝났다면
장기하는 찌질함의 대안까지 제시한다
별일없이 산다는 깜짝놀랄만한 소식에
사랑이라는 감정에 노련하지도 초연할수도 없고
에브리맨스플레인에 그건 니 생각이고를 시전하고
부러움의 시대정신에 찰싹 찬물을 끼얹고
퇴근송으로 사람의 마음까지 준비해놓은
장기하여
오래오래
노래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