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동안 막연히 해외에서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모스크바에서 살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것도 한두 달이 아니라 몇 년의 계획으로 말이다.
나의 모스크바 행이 결정된 것은 20년 11월 중순 정도로 나의 출국 예정일이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이니 대략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에 신혼살림을 정리하고 모스크바로 출국을 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기존 사무실의 업무를 마무리 짓는 것은 물론이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하루하루를 시간에 쫓겨 살았어야 했고 밤이 되면 다음날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근심으로 잠조차 쉽사리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 행을 강행한 것은 내 삶의 전환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7년 가까운 사회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매너리즘은 내 삶에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으므로.
코로나 시대에는 출국도 쉽지 않다
2019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참 쉬운 일이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무후무한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하면서 해외로 나가는 과정이 매우 까다로워졌다.
특히 출국 72시간 전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아 그 결과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다시 그 사실에 대한 영문증명서를 발급받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검사를 받는데 반나절, 다음날 영문증명서를 받는 데에도 반나절이 소요되는 등 시간적인 소모도 만만치 않았지만 총 15만 원에 가까운 코로나 검사 및 영문증명서 발급 비용도 부담이었다. 방역을 위하여 필요한 일이니 필수적인 절차이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이 아니었으면 거치지 않았을 과정이기에 한시라도 빨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과거 바이러스의 창궐을 배경으로 다룬 비디오
게임에서만 느껴지던 그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현실의 일상에서 느끼는 경험을 오래 느끼고 싶지 않다. 부디 모두를 위하여 이 사태가 빠르게 끝나기를.
모스크바로 가는 길은 마음이 무겁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얼추 마무리하고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짐이 많은 나를 위하여 장인 장모님이 공항까지 나를 태워다 주셨고
공항에서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해외살이를 떠나는 나를 배웅해주시기 위해 부모님이 나와계셨다.
나의 삶은 분명히 변화가 필요했고 모스크바 행은 내 삶에 좋은 기회임은 분명했으나 한편으로는 부모들에게 많은 걱정과 그리움을 안기는 선택이기에 마음 한편에 무거움을 가지고 있다. 또한 부모님들 뿐만이 아니라 양가의 조부모님, 외조모님들은 연로하신 나이이기에 많은 안타까움과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그분들에게 그리움을 안기는 무거운 감정의 선택이었으니 나는 모스크바에서 잘 살아냄으로써 그 마음에 보답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모두의 배웅을 받고, 특히 한국에 남은 여러 일처리들을 위해 일주일 늦게 모스크바로 올 아내와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나는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내가 보내준 메시지 하나에 서른 중반 아재의 나이지만 살짝 코 끝이 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