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나의 중대한 미션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후 아내가 모스크바에 올 때까지 홀로 살아남는 것. 그 일주일 가까운 시간 안에 나는 새로운사무실에 적응하고, 또 앞으로 몇 년간 모스크바에서 살 집을 얻어야 했다.
첫날밤은 회사 선배님이 배려해주셔서 다행히도 따뜻하게 보냈다. 그러나 마냥 신세를 질 수는 없었기에 날이 밝자 월세집을 계약하기 전 잠시 머물 호텔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아침이 되어 마주한 모스크바의 모습은 이국적이긴 했지만 알게 모르게 서울의 모습과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었다. 내가 모스크바에 그런 인상을 받은 것은 아마도 이 도시가 수많은 아파트로 이루어진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의 주된 주거형태가 우리와 비슷한 아파트이고 각 아파트 주위로 아이들의 놀이터와 근린공원이 있는 한국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풍경들이 모스크바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행히 사무실에서 내 걸음걸이로 10분 남짓 걸리는 곳에 저렴한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하룻밤에 4만 원을 넘지 않는 저렴한 숙소이었기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어차피 보금자리를 얻기 전 임시로 지내는 곳이었기 때문에 크게 까다로울 부분도 없었다. 다만 염려되는 부분은 식사였는데 처음에 한두 번은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간단한 식사로 대체할 수 있었지만 가면 갈수록 그때마다 식사를 호텔 측에 요청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주변 식료품점에서 간단한 식사를 사다 먹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제공한 간편식
러시아의 우유는 특히나 고소한 맛으로 유명하다
나의 주식이었던 흑빵, 발효빵인지라 시큼한 맛이 있었다
주로 흑빵이나 우유, 물 정도를 두고 한 끼를 때우는 정도였는데 처음에는 버틸만했으나 갈수록 몸이 축나는 것을 느껴 빨리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러시아의 부동산 어플인 시안을 열심히 찾아보던 중 후보군 몇 집을 물색하여 현지 직원을 통해 빠르게 연락했다. 사실 내가 집을 구하던 시기는 12월 말 경으로 10일에 달하는 러시아 최대 명절이 있는 1월 초순 전에 집을 구하지 못하면 1월 중순까지 집을 구할 수 없게 되는, 일종의 촉박함이 있었다. 12월 말까지 집을 구하지 못하면 아내까지 불편한 호텔 생활 1월 중순까지 할 수밖에 없기에 그러한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알아본 몇몇 집들은 외국인에게 집을 빌려주길 원하지 않는 주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행히 현지 직원분이 열심히 도와주시고 또 좋은 집주인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러시아 연휴 바로 전날 집을 무사히 계약하게 되었다. 새로운 집으로 집을 옮기고 이제 아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이래저래 참으로 고단한 일주일이었지만 그래도 고단함의 가치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