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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죽의 베트남 여행 - 하노이 4-4

베트남 독립의 길

by 넙죽

독립과 투쟁의 역사, 호아로 수용소


베트남의 강인한 생명력은 어떠한 고난도 대수롭게 여길 것처럼 보이지만 강대국들의 침략은 베트남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흔적이 바로 하노이 힐튼이라는 별명을 가진 호아로 수용소이다. 실제로 하노이에 진짜 힐튼 호텔이 들어서기 전 미군들로부터 하노이 힐튼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이곳은 베트남전쟁 당시 포로가 된 미군들을 수용하던 포로수용소였지만 그 전에는 프랑스의 지배에 항거한 베트남의 독립운동가들을 가두던 수용소였다. 처음 호아로 수용소에 들어섰을 때 충격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두꺼운 철문 쇠창살은 물론 칠흑까지 어두운 감옥 안은 없던 우울증도 절로 생길듯했다. 베트남이 오랜기간동안 외세의 침략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들의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베트남인들의 희생 덕일것이다. 어쩌면 베트남의 강인한 생명력은 베트남인 자체가 아닐까.

두터운 철문이 암담함을 더한다
세상과 가로막힌 철창이 그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베트남스러운 남자, 호치민


호치민을 빼놓고는 베트남을 말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외세를 물리치고 현재의 온전한 베트남을 이룩한 인물. 흔히 공산주의자로 그를 기억하기 쉽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다. 때문에 베트남은 다른 공산주의 국가보다는 교조주의나 독재에 빠질 위험이 적었던 것 같다. 호치민에게는 공산주의가 그들 민족을 행복하게 만들 유일한 수단이지 않았을까. 호치민은 베트남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하였기에, 조국이 독립하고 통일되었을때, 그 자신이 베트남의 정점에 올랐을때 조금은 그 보상을 누려도 무어라할 사람이 그 누구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매우 검소한 삶을 산 국부 그 자체였다. 가장 베트남스러운 사람, 그가 바로 호치민이었다.

호치민의 묘
하노이의 주석궁g
호치민은 화려한 주석궁 보다는 이 작은 집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20161219_112801_1.jpg 호치민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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