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품은 항구, 홍콩
향항(香港)이라는 한문이름을 가진 홍콩은 과거 향나무들이 운송되는 항구였기 때문에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홍콩에서는 향나무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지만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음식과 사람의 향기들로 넘쳐 난다. 주민의 대부분이 중국계이지만 서양의 생활방식과 문화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신기한 도시 그 홍콩을 나는 탐험한다.
홍콩은 현재는 중국에 속하지만 과거 99년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홍콩이 영국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는 바로 아편전쟁이었다. 19세기의 중국은 그 넓은 영토에서 많은 물산들이 쏟아져 나오는 부국이었다. 특히 유럽인들이 가장 탐내었던 물산은 차였다. 애프터눈 티를 생활화할 만큼 차에 미쳐있던 나라가 영국이었기에 이 차를 손에 본국에 공급하기 위하여 영국이 치러야 할 대가는 상당했다. 당시에 흔히 국제 무역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은이었는데 영국은 자국의 막대한 은을 차를 구입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었다. 무역이라는 것이 서로 간의 주고받음이 있어야 항구적으로 유지될 것인데 영국의 수출품들은 중국에서는 인기가 없어 양국 간의 무역불균형은 극에 달한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고자 영국에서 고안해낸 것이 바로 아편 무역이다. 양귀비에서 추출하는 마약인 아편은 인간에게 쾌락을 줌으로써 고통을 감소해주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중독성이 상당하고 종래에는 그 복용자를 폐인으로까지 만든다. 아편이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영국은 자국의 은을 회수하게 되었지만 중국으로서는 자국민의 건강과 국가 기강이 걸린 커다란 우환거리를 가지게 된 셈이다. 당시 중국의 청 왕조는 아편이 횡행하던 광주지역에 임칙서를 파견하여 문제를 해결하게 하였고 임칙서는 아편을 몰수하는 것으로 그 명령을 성실하게 이행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영국에게 빌미를 주게 되서 아편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홍콩은 영국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현재까지도 중국에서는 마약류의 유통에 매우 엄격하다. 영국에게 홍콩이 필요했던 이유는 아시아 지역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이 가진 힘의 근원은 무역과 해군력이었다. 영국의 상선과 군함들이 보급과 선박의 수리를 하고 교역품을 실을 거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99년이었을까. 본래 영국 측에서는 홍콩을 영구 할양 받을 생각이었겠으나 중국 측에서 조약서를 만들 때 중국에서는 99라는 숫자가 영원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영구라는 말 대신 99년이라는 문구를 넣자고 했단다. 당시에는 어떤 의도였을지는 모르나 정말 문구대로 99년만에 홍콩은 중국의 품으로 돌아갔으니 자고로 계약서는 신중하게 잘 쓰고 볼 일이다.
홍콩에는 영국의 식민지배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센트럴 지역의 구 입법부와 같은 식민시대 건축물도 그렇지만 현재 홍콩에게 많은 부를 안겨주고 있는 금융산업이 그러하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금융 산업이 발달하였는데 홍콩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국의 토마스 잭슨 경이 세운 홍콩 상하이 은행은 아직까지 홍콩을 먹여 살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홍콩에 남아있는 영국의 흔적은 경마이다. 영국인들은 경마를 매우 좋아한다고 하는데 홍콩에도 해피밸리라는 거대 경마장이 있다. 경마장은 경마만을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사교의 장에 더 가까웠다. 홍콩 전역에 흩어져 살던 서양인들과 홍콩인들이 한곳에 모여 맥주 한잔을 하면서 행복을 만끽하는 곳이 바로 해피밸리였다. 역사적인 아픔이 서려있는 식민지배이지만 그것 또한 현재의 홍콩을 만든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