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맛
공교롭게도 상해로 여행을 떠나는 동생 부부와 같은 날에 출국하게 되어 공항에서 만나 같이 식사하기로 했다. 동생부부는 떡볶이, 부대찌개 등 한국적인 음식을 주문했지만 나는 호기롭게 찜만두 하나와 완탕면을 주문했다. 동생 부부는 중국에 가면 만두를 많이 먹겠지만 나는 러시아에 가니 만두먹을 일 따위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고나서 이런 나의 호기로움이 무지에 따른 객기였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이른바 만두 파티. 러시아의 전통 음식 중 이렇게나 많은 만두가 있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처음 만나게 된 만두는 펠메니였다. 할머니 스타일의 전통 만두라는데 간장 대신 러시아의 사워크림인 스메타나를 찍어먹는다. 펠메니는 시베리아 지역에서 주로 먹는 만두로 안에 소고기나 양고기를 간 것이 들어간다. 돼지고기를 속재료로 쓰는 우리나라나 중국과 대조적이다. 때문에 만두를 베어 물었을 때 속재료의 맛이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돼지고기 보다는 소나 양의 육향이 더 강하니까. 시베리아 지역에서 만두를 먹게 된 것은 인접 국가들의 조리법에 영향을 받은 탓도 있겠지만 시베리아의 혹독한 기후 속에서 야외활동을 주로 하는 사냥꾼들의 비상식량으로 먹기 요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만두를 자세히 살펴보면 만두피는 탄수화물이고 만두소는 육류가 주로 들어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니 영양학적으로는 매우 훌륭하다. 게다가 한번 만들어 놓으면 추운 시베리아이니까 상할 일이 없어 보존도 용이하고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편하다. 게다가 물을 끓여 삶거나 끓이기만 해도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보존 식량이다.
내가 두번째 만난 만두는 판세이다. 러시아의 길거리 간식인데 우리의 왕만두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판세 하나를 먹으면 별도의 식사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가격도 우리 돈으로 1,500원 남짓이니 부담도 없다. 두꺼운 만두피 안에 소고기와 양배추가 가득 들어있는데 후추의 향이 강하게 나 이국적이지만 거부감이 없는 맛이다.
나의 만두 파티. 그 종착점은 조지아의 전통 만두인 힌칼리였다. 꼭지가 달린 특이한 모습의 만두였는데 한입 베어 무니 안에서 육즙이 흘러나왔다. 중국 상해의 명물인 샤오롱바오가 생각나는 맛이다. 역시나 육즙이 뜨거우니 조심스럽게 식혀 먹지 않는다면 입 천장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만두만 계속 먹기에는 물린 참이라 조지아의 또다른 명물인 하차부리도 같이 시켰다. 하차부리 한 가운데의 노오란 달걀을 보니 행복의 웃음이 지어졌다. 이제 만두는 한동안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코카서스 지역에 위치한 조지아의 전통 음식을 러시아에서 맛볼 수 있는 것은 조지아가 과거 소련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조지아는 러시아와 다른 길을 가게 되었지만 조지아의 요리들은 아직까지 러시아 사람들도 즐겨 먹는 요리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소련의 독재자로 유명한 스탈린도 러시아 출신이 아닌 조지아 출신이란다.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히틀러가 사실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사실 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인기 관광지로 알려지게 되면서 러시아의 음식들도 우리에게 많이 소개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보르시다. 유독 핑크색의 가까운 붉은 빛을 띤 스프로 처음에는 무슨 맛일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막상 먹어보면 매우 익숙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보르시치가 붉은 색을 띠는 것은 비트의 색이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비트는 무의 한 종류로 보르시는 이 비트와 소고기를 듬뿍 넣고 끓인 스프다. 누군가는 김치찌개 맛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나는 소고기 무국과 같은 맛이 났다. 여기에 러시아의 사워크림인 스메타나를 넣어 먹으면 보다 현지에 가까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러시아인들은 스메타나를 소스로 자주 쓰는데 고열량인 사워크림을 자주 먹는 것은 시베리아의 추운 날씨 때문인 것 같다. 추운 날씨를 견디는 데에는 고지방의 음식이 제일이다. 고지방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내 몸에도 두툼한 지방옷이 생긴다. 그러면 추위를 견디기 조금 더 쉬워지겠지. 스메타나 소스를 풀어 넣기 전에는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었는데 스메타나 소스를 푸니 고소하면서도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두번째 음식은 샤슬릭이다. 쉽게 말하면 꼬치 요리다. 동물의 고기를 쇠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워먹는 요리다. 어쩌면 인간이 고기를 요리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일지도 모른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방금 사냥한 짐승의 고기를 투박하게 잘라 나뭇가지에 끼워 불가에서 구워먹었을 모습이 상상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요리는 불에 구워지면서 기름기가 빠지기 때문에 담백하면서도 불맛까지 나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요즘 관광객들에게 이른바 인기인 음식인 곰새우라고 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하면 킹크랩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이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새우와 다른 맛을 가진 곰새우를 맛보기로 했다. 유독 단단하게 생긴 녀석은 매우 쫄깃한 속살을 가지고 있었다. 곰새우는 해양공원 한 켠에 위치한 가게에서 맛볼 수 있는데 냉동된 녀석을 전자레인지에 해동시켜서 준다. 가격 자체는 물가가 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기 드물게 비싼 축에 드는 음식이었다. 차마 1킬로그램을 먹기에는 그 양도 양이지만 가격도 부담이어서 500그램 정도만을 주문해서 먹었다. 곰새우는 표면이 거칠어 자칫하면 손을 다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머리와 몸통을 동시에 잡아당기면 탱글 탱글한 속살이 쏙 빠져나온다. 한국에서 먹는 새우도 물론 맛있지만 식감이 훨씬 쫀득하다. 맛도 조금 더 짭쪼름해서 별다른 소스 없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의 맛은 보드카이다. 러시아의 술은 단연코 보드카이다. 40도가 넘는 높은 도수를 가진 이 술은 무색 무취의 술이지만 한 입 섣불리 털어넣으면 식도에서 불이 나는 불상사를 경험할 수 있다. 곡물을 증류해서 만든 이 맑은 술은 러시아어로 물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인간은 물이 없이는 살 수가 없듯이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하는 러시아인에게는 위장을 뜨뜻하게 해주는 보드카가 필수다. 러시아의 맛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나도 보드카 한 잔을 시켜 식도에 털어 넣었다. 내가 방금 들이킨 보드카가 내 몸 어디 쯤을 지나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식도가 타들어갔다. 단숨에 몸이 후끈해져서 공항에서 시내로 오는 동안 꽁꽁 얼어버린 나의 몸을 데워주었다.
여행 첫날, 주린 배를 부여잡고 식당에 들어가 버섯이 들어간 팟 로스트 요리를 시켰다. 사실 팟 로스트란 냄비에 고기와 야채 등을 넣고 야채의 수분으로 고기를 찌는 찜 요리법이다. 동서양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조리법이지만 굳이 이 요리를 주문한 이유는 버섯 때문이었다. 주재료인 돼지고기와 감자에 양송이 버섯의 향이 가득 배어 나와 행복한 맛을 선사했다. 똑같은 식재료인데도 유독 맛있게 느껴진 것은 추운 날씨에 여행을 해 유독 허기졌던 나의 위장 탓도 있지만 러시아의 광활한 숲에서 자란 버섯 자체의 맛 또한 훌륭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당분간 못잊을 맛이 될 것 같다.
러시아 음식으로 유명한 것 중에 블린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크레페와 비슷한 전병 종류다. 밀가루나 메밀가루 등을 반죽하여 얇게 펴서 부친 후 그 안에 다양한 재료들을 넣어 먹는 것이다. 꿀이나 베리류, 견과류 등을 넣어 달짝지근하게 디저트로도 먹지만 나는 보다 식사가 될 만 한 것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양송이 버섯과 햄이 들어간 블린을 주문했다. 사실 전날 팟로스트로 먹은 버섯 맛이 잊혀지지 않아서 여기서도 버섯이 들어간 블린을 시켰다. 역시나 블린 안에 들어간 버섯도 훌륭했다. 참 신기했다. 버섯이 이렇게나 맛있다니! 그것도 진미로 유명한 송이 버섯이나 송로 버섯도 아니고 흔하디 흔한 양송이 버섯인데! 버섯에 진한 향과 감칠맛이 나의 미각을 사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