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죽의 러시아 여행-블라디보스토크 4-3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맛보기

by 넙죽


러시아 혁명이 남긴 것들


자본주의와 함께 20세기를 양분했던 이념인 공산주의는 러시아 혁명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의 마르크스가 주창한 이념을 실제로 구현해낸 나라가 러시아였던 것이다.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러시아의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는 농노제라는 전근대적인 제도를 유지하며 농민들을 구속하는 상태였다. 도시 노동자들의 삶도 과도한 노동강도와 턱없이 낮은 임금 등으로 인하여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크림전쟁과 러일전쟁 등의 실패로 인하여 황실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1차 세계대전까지 참전하게 되자 민중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레닌은 민중에 의한 폭력적인 혁명을 통하여 정권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의 볼셰비키 파가 혁명을 통해 정권을 획득하면서 러시아 혁명은 성공하게 되고 러시아에 공산주의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게 된다. 그러나 혁명 이후에도 러시아 민중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볼셰비키 파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는 적군, 반 볼셰비키 파는 백군이 되어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싸웠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중앙광장인 혁명 광장에는 혁명을 위해서 싸운 이름 없는 소비에트 병사들을 기리는 동상이 놓여져 있다. 사실 이곳 시베리아는 적군과 백군이 치열하게 싸운 격전지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얼마나 많은 젊은 이들이 시베리아의 눈밭에 붉은 피를 흘려갔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 피를 댓가로 러시아에는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이 만들어지게 된다.

레닌의 동상
블라디보스토크의 혁명 광장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러시아 역사에서 큰 전쟁을 대조국전쟁이라고 하는데 보통 나폴레옹 전쟁과 2차 세계대전을 들 수 있다. 특히 2차 세계대전하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나 덩게르크 등 서부전선이 부각되지만 동부전선 또한 서부전선 못지 않게 치열했다. 여기서 동부전선이란 소련 나치 독일과의 전장을 의미한다. 당시 소련과 독일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독일 보다는 소련 쪽의 피해가 훨씬 컸다. 수많은 소련 청년들의 희생이 있었고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소련은 히틀러의 나치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당시 청년들의 희생을 기리는 영원의 불꽃이 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양 옆에는 소련의 2차 세계대전 참전연도인 1941과 1945라는 숫자가 자리잡고 있다.

영원의 불꽃


러시아 정교회와 키릴문자


러시아의 국교는 러시아 정교이다. 동방정교회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러시아가 이 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기까지 과정이 참 재미있다. 키예프의 대공이었단 블라디미르는 국가 체제의 정비를 위해서 외국의 종교를 수용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이슬람교의 세력이 강한 것을 보고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자 했으나 술을 금하는 계율이 있다는 것을 듣고는 비잔틴 제국의 종교인 동방정교회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추위를 이겨내는 데에는 술만 한 것이 없으니 술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러시아 정교를 워낙 독실하게 믿다 보니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곳곳에서도 정교회 사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르바트 거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체르니곱스키사원과 시내와 조금 떨어져 있지만 파란 돔 지붕이 인상적인 포크롭스키 사원이다. 비잔틴 제국으로 부터 받아들인 종교라서 그런지 비잔틴 제국의 양식을 닮은 양파 모양과 비슷한 돔 지붕이 특색이다.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동방 정교를 받아들이면서 러시아는 키릴문자를 받아들인다. 키릴문자란 그리스의 사제였던 키릴 형제가 그리스의 알파벳을 기본으로 러시아의 슬라브족에게 적합한 문자로 만든 것이다. 러시아 정교와 키릴문자 모두 현재 러시아 문화를 설명하는 데에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체르니곱스키 사원
푸른 지붕이 매력적인 포크롭스키 사원
독수리 전망대의 키릴 형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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