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밥에 대한 이야기
애끼는 동료가 임신을 하고 나니 엄마 음식이 그렇게 새삼 생각이 난다는 말에 '그것은 과연 클리셰가 아니었나.' 이기적인 나는 또 나부터 걱정이 앞섰다.(애 낳고 엄마 생각날 걱정을 하기엔 너무나 먼 일이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그래서 뭐가 먹고 싶냐고 물으니 장조림이 먹고 싶단다. 나는 엄마가 해준 장조림을 세상 누구보다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지 해본 일은 없었지만, 그게 뭐 어렵겠나, 해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컬리 앱을 켜고 이것저것 담았다.
고기취향을 모르니 우선 한우 우둔살과 양지를 둘 다 사 넣었다. 나는 스지를 좀 더 좋아하지만 좀 더 담백하게 하면 좋겠다 싶었다. 집에 있던 심다누팜 달걀도 있는 대로 다 삶아냈다. 고기를 초벌 삶아두고, 연육을 돕는 배와 냄새를 잡아주는 생강, 뿌리째 씻은 대파와 양파, 통후추, 뿌리다시마 같은 것을 넣고 압력솥에 끓여냈다.(압력솥은 정말 몇 년 만에 꺼낸 것 같다.) 엄마는 늘 고기 요리는 압력솥을 쓰셨다. 고기는 건져내고 육수를 채에 걸러 어간장과 알룰로스로 간을 맞췄다. 당을 줄이는 일이 맛은 덜하겠지만 임산부에게도 좋을 것 같아 물엿은 생략했다. 나는 청양고추를 넣어 맵싹 한 맛이 감도는 것을 좋아하지만 혹시 몰라 꽈리고추와 통마늘을 함께 넣고 마지막으로 졸여줬다. 뜨끈하게 김이 오르는 장조림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가 없어 냄비밥을 조금 해 버터를 넣고 슥슥 비벼 먹으니 삽시간에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탑승하게 된다.
요리를 하느라 집안 가득 찬 수증기, 바닥에 상을 펴고 엄마가 비벼주는 간장밥을 발을 쭉 펴고 젓가락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춤을 추며 기다렸던 저녁 밥상이 떠오른 것.
사실 나는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주로 도시락 반찬을 나눠주긴 했어도 뺏어먹지는 않았다. 늘 엄마 음식은 월등했으며 그 영양 균형 또한 남달랐다.(모두에게 자기 엄마 음식은 1등 일 것.) 음식을 먹는 속도가 현저히 느린 나를 아는 엄마는 밥이 담긴 통에 중간쯤 먹어내려가면 레몬 빛깔의 체다치즈가 녹아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녹아내린 치즈가 잘 안보이지만 입 안으로 느껴지는 짭쪼롬 고소한 치즈맛이 느껴질 때면 나혼자 씩 웃었던 기억이 있다. 때로 치즈가 없을 땐 야채모둠전 같은 것이 밥 밑에 깔려 있기도 했다. 아마도 친구들 나눠주느라 반찬이 모자랄 것을 걱정했던 것. 옹졸하게 반찬을 지키기보단 잘 나눠 먹어라 네 것은 네 밥통에 또 숨겨뒀으니.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뭣보다 지금도 믿을 수 없는 일은 매번 직접 구운 김을 작은 메모와 함께 은박지에 싸주었던 일인데 지금 생각해도 저걸 대체 매번 어떻게 했을까 싶다.
이렇게 나는 늘 고생스럽고 과한 정성이 담긴 멋진 음식들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기에, 나의 입맛에도 확신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자존감이 세상 풍파에 다 털려 나갔음에도 내가 굳건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먹어 없앤 엄마의 수많은 음식에 대한 기억 덕분이다.
그런 자신감으로 엄마의 맛을 더듬어 가며 만든 장조림은 다행히 그녀의 입맛에도 잘 맞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어떤 남자에게도 해줘 본 적이 없는 일이지만 그녀이기에 앞으로도 뭔가 먹고 싶다면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만들 것 같다.(나 역시 그녀 엄마의 레시피로 만든 부추만두를 얻어와 맛있게 이북식 만둣국을 끓여 먹었다. 로데오 단골집보다 더 풍미가 있었다.) 엄마의 장조림은 매번 새로 한 것처럼 맛이 있었는데, 상에 덜어 올릴 때마다 고깃덩이를 그때그때 덜어 찢어주셨다. 왜 손으로 하냐고 찡얼거렸지만 그 손맛으로 큰 것이 나다. 덕분에 그 맛을 기억해 낼 수도 있었다. 엄마밥에는 그런 힘이 있다.
일타강사가 입이 유독 짧고 시름시름 앓던 중에 야무진 반찬가게 아줌마 밥을 먹고는 기운을 차리게 되고 그 효험이 기이하여 자꾸 반찬가게를 드나들다 그 사장과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가 있었다. 알고 보니 수험생 시절, 그 반찬가게 아줌마의 엄마가 하는 밥집을 구내식당처럼 드나들었고 밥값이 없는 학생을 배려해 공짜밥도 많이 줬던 일이 있었다는 거다. 그렇게 마음에 기억된 음식의 맛이 이어져 사랑의 인연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참 식상하고 뻔한 이야기. 그럼에도 우리는 끄덕일 수밖에 없다. 겪어봤기 때문에 그렇다.
에이 설마 그럴까 싶던 것들은 결국 시간을 흘려보내고 내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로소 알게 될 뿐.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런 요행은 인생에서 허락되지 않는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매번 확신하지 않을 것. 정답이라고 느껴지는 강도가 셀수록 의심할 것. 내 마음과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끝없이 되새길 것.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