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칼과 채썰기 사이

더딤 더딤 무나물 만들기

by JuneK

*2017년 2월의 글을 수정하여 올립니다.



밥 지어먹는 생활


2월 22일

엄마는 무나물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나도 자연스레 무나물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두꺼운 팬에 슥슥 뽀얗게 우러나는 무나물을 가득 볶아주면, 나는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슥슥 비며 반찬도 없이 후루룩 먹어대곤 했다. 무나물의 감칠맛은 어떤 조미료보다도 대단한 것이어서, 따끈한 밥 위에 올려 퍼먹으면 하루종일 밥을 먹던 나도 한 그릇 뚝딱이었다. 엄마의 요리는 늘 건강하고 사랑이 가득 넘쳤다.


오늘 아침 별생각 없이 무를 써는데, 무를 써는 데에 무아지경이 되어서는 무 한통을 다 썰어버리는 통에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 아침식사시간을 20분이나 늦춰서야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나라는 인간...


그나저나 엄마는 무나물에 소금 간만 휘릭 해서 줘도 그렇게 아삭 달콤 고소 했던 무나물이 왜 나는 이렇게 니맛도내맛도 아닌 것이 되는지 영 어렵다. 엄마는 빙긋이 웃기만 한다. 웃지말고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하다보면 늘지~ 하고 마는 엄마다.


채칼을 사고 싶은데, 그게 정성이 덜 들어갈세라... 또 멈칫멈칫하게 된다. (결국 사고 잘 쓰지도 않아 다시 더딤 더딤 칼로 채썰기를 할 뿐이다.)



2월 23일

훈제오리구이, 파프리카, 단무지무침, 갓김치, 애호박새우젓국, 현미밥


*뇌세포의 밥은 당류다.

과일도 당이 많지 않은 키위, 딸기, 멜론, 오렌지, 귤 등으로 제한한다.


엄마는 매일 아침밥을 무슨 생각으로 차렸을까 생각해 봤는데, 먹는 내 새끼들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이니 콧노래를 부르며 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밥 짓기를 하는 동안 고되다는 생각보다는 나의 서툼이 미안하기만 했다. 엄마만큼 멋지게 해내지 못해 안타까웠다. 때로 엄마 김치를 배우지 못한 일이 미안했고, 그 김치 맛이 그리울 일을 미리 걱정했다. 이기적인 년. 다 내 걱정이다.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패드로 법륜스님을 듣고 있다.

요리가 되는 순서대로 하나씩 상에 올린다.


금방 강아지새끼를 부른다.


얼릉 와유~


엄마가 밥상으로 부른다.




오래가야 할 일이기에, 오늘은 귀엽고 밝은 일기들을 부러 골라온다.

우리는 1년간 그래도 많은 밥을 함께 먹었다.

밖으로 나돌기 좋아하고 집에는 관심이 없던 무심한 딸년이라,

대학 졸업 뒤에는 집구석에서 밥을 먹는 일이 없었다.


밥을 같이 먹는 것이 '식구'랬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

엄마 입에 음식 들어가는 걸 보는 일이 늘 기쁜 나날들이었다.

음식이 남으면 미안했고, 비워지면 고마웠다.

그런 시간과 기회를 주어 감사할 뿐.

끝까지 엄마는 이런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