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순씨 이야기
*2017년 4월 10일의 글을 수정하였습니다.
2015-2017년 근무 내내 부산으로, 중국으로 홍길동처럼 잘도 돌아다니던 회사를 나는 만 2년의 근무를 마치고 사직하였다. 이직이 결정되어 퇴사 의사를 밝힌 것이었지만, 당시엔 그런 이야길 직접적으로 하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저 쉬어야 할 타이밍이라고만 이야기했다.
이직의 계기가 된 것은 엄마의 일을 지나오며 정신이 없는 와중에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 동료가 평소 관심 있던 회사의 공고를 공유해 주었고 처음엔 지금 그럴 겨를이 있나, 생각을 하다 문득 '이 시기를 돌아봤을 때 나의 엄마를 원망하지 말고 이런 때일수록 더 밀도 높은 삶을 살자.'라는 생각으로 부랴부랴 준비한 이직이 합격한 탓이었다. 결정이 된 날에도 나는 동경에 엄마의 약을 사러 방문해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승인 나지 않은 약이었는데 커뮤니티에서는 먹고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도 보이고, 마음이 조급해서 엄마에게도 하루라도 빨리 그 약을 먹게 하고 싶었다. 당시 염치도 없이 한동안 연락도 안 하던 지인에게 부탁해 일본어 검수를 받고 메일을 보냈다. 상태를 설명하고 처방전을 요청하고 약을 직접 가서 받았다. 긴자에 있는 병원에서 약을 수령하고 나오는 길에 국제 전화로 합격 통보를 받은 날이 기억난다. 얼떨결에 받은 전화, 당황스러운 내용에 제대로 기뻐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이 결정이 난 후 단 며칠은 밖으로 돌고, 멍하게 지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놀라웠던 경험은 2차 면접을 다녀와서 너무 절었던 것이 후회되기도 하고 뭐 이제 어쩌겠냐 될 대로 되라지의 마음으로 엄마에게
"엄마 안될 수도 있는데, 걱정하지 마. 안되면 말지 뭐."라고 했더니
갑자기 엄마는 분명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반드시 되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확신에 찬 그 말이 너무 이상해서 "에이,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라고 받아쳤는데 엄마의 음성은 또렷하게 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너 반드시 된다. 걱정하지 마."
그때도 지금도 엄마의 저 확신은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못했다. 그러나 빈 말의 위로는 아니었고 미래라도 보고 온 사람처럼 확언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 나를 저렇게 무조건적으로 믿고 지지했던 경험이 있었나. 내 평생, 나를 향한 가장 강력했던 믿음이었다. 아마도 저 믿음이 지금까지 나를 살아가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직 공백 기간과, 엄마의 음력 생일이 겹쳤다. 우린 한 번도 같이 둘이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마 기회는 이 번 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던 것 같다. 근무시간에 마포구청으로 엄마를 불러 여권을 신청한 게 목요일, 엄마 여권이 4월 4일에 나온다는데 그 기간에 맞춰 티켓팅을 했다. 후쿠오카행이다. 나도 초행이었지만 아무래도 엄마는 깔끔한 소녀니까 중국보단 일본, 이런 식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편하고 고요한, 예쁘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들의 여행 이야기를 모두 하자면 너무 길지만, 닛코 호텔에 예약하면서 생일인 엄마를 위해 웰컴 카드를 부탁했는데(들어줄지는 생각하지 못한 채로) 막상 체크인을 해보니 방 침대 위에 하얗고 보드라운 닛코 호텔 마스코트를 카드와 함께 선물해 두었다.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그 작고 보드라운 하얀 곰을 엄마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티 없이 맑은 아이 얼굴을 하고 몇 번이고 쳐다보며 좋아했다.
엄마한테 이름을 지어달라 부탁했더니... 침대에서 얼마간 가만히 골똘한 표정을 짓더니
미순이란다.
꽃 미순.
성이 꽃, 이름이 미순.
너무 이쁜 이름이었다.
여행 내내 엄마 미소는 너무 눈이 부셨다. 우리는 분홍 가디건을 입고 벚꽃을 실컷 봤다. 수로를 따라 걷고 장어가 맛있다는 맛집에 가서 장어도 먹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야속했다. 나도 걷기가 힘들었는데, 엄마도 무리했을 거다. 무식한 딸년이라 엄마 체력을 챙기지 못해, 엄마는 여행을 다녀와 대상포진을 앓았다.
체력도 면역도 걱정이 되어 항암 전 비급여 면역 세포 배양 주사를 맞았다. 주치의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당시 내 논리에 납득이 되는 치료였다. 엄마의 혈액을 뽑아, T세포 위주의 배양을 거쳐 2주 뒤에 다시 투약하고 암세포와 잘 싸울 수 있는 면역 세포를 공급해 주는 방식이었다. 산 세포들도 다 죽인다는 항암은 늘 걱정이었고, 이런 예방도 하지 않으면 엄마가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안 할 수 없었다. 다시 엄마는 4월 8일 오전 아바스틴을 2차로 실시했다.
출혈이 있을 때 시신경의 손상이 있었는데, 마주 보고 대화를 하거나 젓가락질을 하는 모양을 살펴보고 있으면 오른쪽 시야는 많이 좁아지는 것 같다.
이제 밥상은 엄마의 왼편으로 조금 더 잘 보이게 차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요번 주말은 웬일인지 나가려고는 하지 않아서 종일 쉬었다. 아마 몸이 힘든 거라고 생각했다. 토요일에는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두전골도 먹고, 궁구경도했는데. 많이 걷고 또 피곤했을 것.
자꾸 무리하게 된다. 나의 결정은 모두 반성 투성이다.
무리하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오늘 보니 입술에 물집이 생긴다. 목 주변으로 사마귀들도 좀 보인다. 면역력이 떨어지지 말아야 될 텐데, 걱정에 걱정이 쌓이는 주말이었다.
마음도 머리도 복잡해서 빨래를 세 번이나 하고, 자는 방은 다 뒤집어댔다. 겨우겨우 정리해 두고 나니 내일 첫 출근이 또 고민이다. 뭐라도 들춰보고 갈까 하다, 그래서 뭐 달라지겠나 싶다.
엄마가
"딸은 내일부터 바쁘겠네, 앞으로 한 달은 바쁘겠네. 괜찮아, 우리 주말에 놀자- " 한다.
엄마는 언제든 나를 늘 나아가게 했고, 지금도 그렇다.
엄마 나는 엄마가 믿어주듯, 어디서든 잘할게.
엄마도 잘해!
잘 자! 내일 만나-
*
일본에서 만난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와불상을 보고 왔는데, 그 와불상 발바닥을 만지면 횡재한다는 설이 있다. 나는 횡재는 됐으니까 내년에 또 이곳에 엄마와 같이 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 걸 들어줄 수 있다면 내 마음이 전해졌기를.
결국 저 와불상에 다시 가보지는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갈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