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있어도 듣고 싶은 말 "잘 갔다 와!"

그녀의 배웅을 받던 날들이 그리워서

by JuneK

*2017년 3월 15일의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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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술을 마시고 술집에 그득하던 담배냄새를 묻혀 들어갔다.

개코 엄마는 다 알았을 텐데도, '내일 얘기하자. 잘 자-.' 하고 잔다.


다음날아침, 이것저것 섞어 먹어 괴로운 두통에 시달리며 알람을 듣고 일어난다.

아침에 도착해있는 이마트 장본 것들을 들고 들어와 정리를 해 넣고, 꽁치김치찌개를 끓였고, 음식을 차리고 엄마가 식사하는 걸 살피며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핸드폰도 조금 한다.(속도가 붙어 약간의 여유도 생기기 시작한다.) 막상 요리를 하고 나면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고 새콤한 게 땡긴다. 홍초나 오렌지 주스 같은 걸 많이 마시게 된다. 아침 밥상 앞에서 이런저런 일상 얘기를 나눈다. 어젠 뭐 했는지, 날이 더운지, 일이 바쁜지 같은 것들. 엄마는 오늘 찌개가 평소 싱거운 음식들보다 간이 맞는지 연신 국물을 짜 먹어서 나는 또 잔소리를 했다. 엄마의 식사는 늘 신경써서 준비했었다. 간은 되도록 적게,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가지 않도록. 지금 영양학을 아는만큼 그 때도 알았더라면 마냥 저탄수로 식단을 짜지는 않았을텐데, 여전히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다. 그 땐 겁이 많아 엄마 커피 한 잔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암의 증식을 되도록 막고 싶었지만, 맘처럼 쉽진 않았던 것 같다.


식사가 끝나면 대충 치워두고 출근 준비를 한다. 시간이 없어도 챙길 집안일이 많아도 더 잘 챙겨 입는다. 아침마다 엄마와 어떤 코디가 좋은지 패션쇼처럼 이야기 나누는 일이 재밌다. 동네 커뮤니티에서 가끔 옷을 사 오면 엄마랑 입어보고 깔깔대던 겨울날들이 생각난다. 출근할 때 화사한 옷을 입을수록 엄만 예쁘다고 해줬다.


엄마는 아침에 항상 문 앞까지 나온다.

귀엽게 핑크핑크 한 양말을 신고, 손은 항상 보송보송하다.

엄마의 사랑 넘치는 에너지는 종양 따위가 가릴 수 없이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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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엔 엄마 옆에 스르륵 들어가 더 잔다. 오늘은 뭘 먹을까? 오늘은 어딜 놀러 갈까? 계획을 세운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자기 머리에 뭐가 있어서 냄새가 나는 게 아닐까라고 물어본다.

엄마가 뭔가 느끼기 시작하는 걸까.


지금의 엄마가 사는 세상은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다. 자주 말을 걸어볼 뿐이다.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의 커다란 눈망울과 속눈썹은 정말 예쁜데, 보고 있으면 자꾸 빠져든다. 외꺼풀로 태어난 나는 늘 엄마의 큰 눈을 볼 때마다 나는 대체 어느 다리 밑에서 주워왔냐고 샐쭉댔다. 엄마는 늘 그때마다 자기도 스물여섯 크게 아플 때 생겼노라고, 기다려보라고 했다. 나는 엄마 덕에 크게 아팠는데도 여전히 눈은 외꺼풀이다. 내가 아무리 뷰러에 마스카라 솔을 쓸어 올려 댄들... 어림이 없다. 엄마한테 물려받지 못한 건 저것뿐만은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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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처음 입원한 서울대본원, 서울대분당, 예약할 수 있는 신경외과는 모두 다녀왔다. 뇌종양 환우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언급되는 유명한 의사들에게는 다 찾아가 모두 엄마 자료를 보여주며 의논했다. 오늘은 새벽부터 나와 세브란스로 갔다. 역시 같은 얘기를 한다. 삶의 질을 올리고, 그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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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할 줄 알고 사는 삶은 정말 고맙다. 특히 불효자에게는 더욱 그러한데, 당연히 너무 고맙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무섭기도 하다. 오늘은 600장 정도의 엄마와 찍은 사진을 인화하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수전이며 공기청정기며 필요한 것들을 계속 사댔다. 혼자 대충 잠이나 자느라 드나들던 집이 본가보다 119 센터와 병원이 가깝다는 이유로 급히 모셨더니 필요한 것 투성이다. 깨끗한 공기를 좋아하는 엄마에게 강변북로에 붙어 있는 미안한 집이지만, 어쩔 수 없다. 무력해지는 날엔 검색 창에 현명하게 이별하는 방법을 검색해 본다. 뭐 나올 리가 있나. 부모와의 이별은 가르쳐 줄 수도 없는 모양이다.


나는 한 세상 내 잘난 잔머리를 믿으며 똑똑한 줄만 알고 살았는데.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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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받는 배웅이 이렇게 소중한 줄 알았더라면.


엄마가 잘 다녀오라고 언제고 인사해 주면 좋겠다.

듣고 있어도 듣고 싶은 말 "잘 갔다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