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사는 일이 염원이 되는 날들
*2017년 3월 13일의 글을 수정하였습니다.
평소처럼 굴려고 애써야 한다. 병원 검진날은 늘 신경이 곤두선다.
출발 시간에 맞춰 집에서 출발하는 택시를 부르고, 그 시간에 맞춰 나도 회사에서 바로 병원으로 출발한다. 엄마를 간호하는 과정에서 아빠에게 많은 걸 부탁하는 일은 접게 되었다.
엄마가 아프고 난 뒤 여러 번 실수가 있었다. 그 모든 일들을 잊지는 않았다. 마음에 남을 만큼 큰 실수도 있었고, 그럼에도 내 마음이 버거워 흘려보낸 일도 있다. 그때는 그것을 분노로 표출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에겐 평생의 데이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살뜰히 챙기는 일보다는 챙김 받는 일에 익숙했고 열심히 맡은 일을 해내고 돈을 벌던 사람. 엄마가 복숭아를 깎으면 옆에서 복숭아 조각이 하나, 둘 생길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다 집어먹다, 복숭아 갈비를 뜯고 있는 엄마를 보면 그때서야 미안해서 새로 깎아주겠다던 사람. 어릴 땐 그게 참 얄미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미치는 범위는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 어쩌면 엄마가 그가 그렇게 살아도 되도록 너무 챙겨, 그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인생 만렙, 해결사 엄마가 아파지자, 더 든든한 사람이 되는 대신 그는 나사가 한두 개쯤 빠진 사람이 되었다. 넋이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기대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존재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순간들도 있다.
위기의 순간에 나처럼 가시를 뿜어내며 정신을 차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멍해지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때를 회상하면 우린 모두 엄청나게 큰 엄마의 빈자리를 아등바등 메꿔내느라 다들 최대치로 무리하고 있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그런 존재였다. 일순간 지붕을 혼자 받치고 있던 대들보가 붕괴된 것이라면 적절한 비유일까.
엄마는 한평생 우릴 엄마 없인 못 사는 존재로 무기력하게 만들어놓은 사람이다.
엄마를 집에서 모시고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 일도 그에게는 꽤 정신없고 긴장되는 일일 것을 알기에. 먼 곳에서 택시를 부르고 택시 기사와 소통하는 일은 내가 하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카카오택시 기능에 2대를 함께 부르는 기능이 생겼지만 그땐 없어서 하나는 카카오로 부르고 나는 회사 앞 도로에 서서 택시를 잡았다. 엄마가 타는 택시가 혹여 담배냄새는 나지 않는지, 기사님이 불필요한 질문을 하진 않는지, 급정거 급출발을 하진 않는지 하나하나 엄마와 동행하는 아빠와 소통을 한다. 지금 돌이키면 저 때 나는 정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온몸에 밖으로 가시를 뻗어 놓고 어디라도 걸릴세라 초긴장의 상태로 지냈다.
병원에 미리 도착해야 한다. 가능하면 그러는 게 좋다. 내려서 엄마가 날 발견하면 하루에 한 번은 웃는다. 그게 나의 작은 목표가 된다. 어쩔 수 없이 담당교수방 앞에 앉으면 견딜 수 없는 긴장이 올라온다. 호명이 되고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엄마의 아이폰을 가방에 넣고 녹취를 한다. 나에 대한 믿음 역시 적었기에 모든 건 기록하고 저장해 뒀다. 지금 돌이켜보면 매 순간 내려야 하는 판단의 무게에 꽤 지쳐있었던 것 같다. 들어가자마자 의사 얼굴보다 먼저 보는 것은, 벽에 띄운 엄마의 사진이다.
MRI의 종양 크기가 많이 커져있다.
마음이 끝을 모르고 내려앉는다.
'엄마는 너무 잘해줬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왜?'
엄마는 먹고 싶은 커피 한잔을 맘껏 먹지 못했다.
하루 산책도 빠짐없이 했다.
자장구도 열심히 탔다.
입술을 깨물며 내가 공감할 수도 없을 두통을 참고 그때마다 염주를 돌렸다.
엄마는 앓는 소리 한 번을 낸 적이 없다. 아마도 너무 아파 그랬을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고 엄마를 바라보는 것,
온몸으로 아픈 것을 버티느라 오므려진 발가락을 조심스레 쓰다듬는 것뿐이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머릿속을 흘러가는 엄마의 매 순간이, 그 간절한 일상이 애처롭다.
나의 황망한 마음은 마음에 두고 평소처럼 태연하게 행동해야 한다.
늘 의사와의 대화는 건조하고 짧다.
당시 나는 그들을 가능한 한 최대한 불신했고, 그래도 여전히 놓을 수는 없었기에.
엄마는 아직 눈에 띄는 어떤 증상도 없는데, 이렇게 무력하게 잠식당하고 있는 걸까.
사실 흔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미리 준비하고 행하지 못한 것들이 힘들고 괴로울 뿐.
아직 시간이 있다.
아직 기회도 있다.
하얀 모자가 좋다고 엄마는 아기처럼 웃었다.
- 당일의 메모
일본에 약을 사러 며칠 집을 비웠다 돌아왔을 때, 며칠 만에 본 엄마가 너무 아가 같아서 많이 속상했는데.
엄만 나랑 단둘이 있으면 돌연 원래 엄마로 돌아와 나를 다독인다.
평소처럼 사는 일이 염원이 되는 날들이다.
우린 아직 언제든지 오고 있을 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