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악 물고 버틴다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

by JuneK

나와 나의 다채로운 사람은 17년 봄에 일본으로 함께 건너가 벚꽃을 봤다.

다녀와 곧 대상포진을 앓았다.


그녀의 생일엔 호텔에서 자고 철판요리를 먹었다.

아주 더운 여름을 정신없이 지나왔다.


그 와중에 나는 업무로 간혹 며칠씩 집을 비우는 출장이 있었다.


늦여름부터 그녀의 상황이 힘들어졌다.

이후로 항암과 방사선, 전원 등의 일들이 있었다.


서울대병원에서 백병원으로 다시 성모병원으로 옮겨오는 동안에도 돌아보니 나는 객관적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매일을 치열하게 보냈을 뿐.


돌아보면 호스피스였던 성모병원은 결국 죽음을 준비하러 가는 곳이었다. 물론 이런 정보는 모두 다 인지한 상태로 의사결정을 했다. 하지만 그때의 일기를 열어보면 나의 인지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사실을 왜곡하고 있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매일 아침의 회진에 주치의는 늘 직접 나에게 엄마의 상태를 물었다.


"어젠 좀 어떻던가요? 대화는 많이 했나요?"

"네, 대답도 하시고 눈도 마주쳤고- 웃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럼 내 대답을 듣는 주치의는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당시의 나는 '저렇게 돈을 벌 거 같으면 참 그래 할많하않이다.' 뭐 이런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와 제외한 모든 것들은 의심과 전투의 대상이었으므로.


사실 나는 엄마와 대화를 한지도, 목소리를 들은 지도, 그녀의 따듯한 눈길을 마지막으로 받은 지도 1주, 2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인지하지 못했다. 아마도 주치의는 나 스스로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열이 오르는 엄마의 발바닥에 아가들의 이마에 붙이는 열 패드를 붙여놓고 늘 엄마를 정해진 시간에 거즈목욕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아로마틱 우드 로션으로 마사지를 했다. 빠져가는 근육이 걱정되어 공연히 엄마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기도 하고 누운 위치를 바꿔주기도 했다. 나는 공간의 무드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던 터라 그 병실에서도 아로마 디퓨저에 재즈를 들어놓고 앉아있었다. 24시간 중 쪽잠을 모두 모아 2-3시간을 잘 뿐이지만 아침이면 매일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하고 늘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희미하게 기억하는 파편들 뿐, 전후 몇 년의 기억이 거의 없다. 친구를 만났던 기억이나 어떤 모임에 갔던 일도 내 기억에 전혀 없는 경우가 있는 걸 깨달을 때가 있는데, 아마 저 시절의 일부를 기억에서 들어내야만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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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했던 이유는, 앞으로 기록을 꺼내올 11월과 12월의 일기는 겪은 당사자의 입장으로는 지독하게 아픈 것들만 남았다. 기록되지 못한 시간들은 더 아픈 시간들이겠지. 지금부터의 기록은 현재 2023년의 나의 견해를 최대한 걷어내고 당시의 기록 그대로를 옮기기로 한다. 헛된 희망을 품었던 때라고 해도, 엄마는 여전히 괜찮다고 믿고 싶었던 그 마음까지 모두 그대로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날, 어떤 이유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생존을 위해 기억이 휘발된다면 그냥 이 기록들을 열어 보고 싶다. 그때의 나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이해하고 싶다. 이제는 그래도 괜찮을 만큼 내가 몸도 마음도 튼튼해졌을 거라 믿고 싶다.









2017년 11월 19일


엄마가 금요일 방사선이 힘들었는지, 어제는 거의 잠을 못 잤고 4시간 동안 구토를 여덟 번 했다. 오늘은 식사를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이야기만 뱉어낼 뿐이다.


"이렇게 힘들 거면 그만 끝내고 싶다"고 했다.


언제든 의연했던 나는 결국 저 말에 말문이 막혔다. 존재가 곧 삶이었던 사람이다. 엄살이라고는 부릴 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끝을 언급하고 있다면 그녀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얘기였다. 정신력과 의지로 버틸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서고 있다는 얘기기도 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답도 없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의지가 기적을 만들 거라고 그녀의 위대했던 모든 순간들에 의지했던 것 같다. 언제든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했던 사람이니까. 이번에도 역시 우린 다를 거야. 우린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굳건한 믿음이 일순간 부서지는 저 말에, 나는 목에 삼켜서는 안 되는 큰 살구씨 같은 걸 삼켜서 꽉 눌러 막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불사조 같은 엄마는 많이 지쳐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언제부터 얼마나 견딘 걸까.


혀뿌리부터 저려오는 느낌에 눈물이 쏟아졌지만 그 말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엄마가 그만큼 아프다는 거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해. 대신 아프고 싶은데 미안해. 빨리 약 달라고 할게."


짜증이 늘고 말수는 줄었다.

이제 그녀는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 하고 있다.


"아프다, 안 아프다, 울렁거린다, 머리가 너무 아파, 약은 언제 오는 거니."


이후에도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녀의 두통이 얼마나 극심할지 나는 상상할 수도 없다.

혈압이 종일 높다. 170을 오간다. 누우면 머리가 아프고 앉아있으면 체력이 떨어진다. 오늘은 평상 테이블에 기대어 겨우 버틴하루였다.


점심은 바나나 반쪽.

그나마 그것도 구토할 때 다 나왔다.


저녁엔 약을 더 쓰니 일찍 잠든다.


또 한 번의 방사선을 스스로 선택한 그녀가 원한 건 이런 일상이 아니니까.


나는

우리는

꼭 해내야 한다. 그녀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가자.

진짜 반드시 봄은 다시 올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