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침상에서 윗몸일으키기 하는 딸년

삶과 죽음은 이음동의어

by JuneK

삶과 죽음은 이음동의어다. 그저 표현을 달리 할 뿐.


나는 엄마를 간호하는 동안 평생 어떤 식으로든 해왔던 운동을 모두 멈췄다. 몸 쓰는 걸 좋아하고 생각이 멈추기 위해서는 다른 자극이 들어와야 하는 사람이었다. 도파민 중독 상태를 원동력 삼아 땔감으로 쓰던 때라 더욱 그랬다.


얼마쯤 지나서 어느 날은 문득 소변 통을 비우거나 수저를 간단히 설거지하는 일 외에는 병원 병동 밖으로 며칠씩 나가지 않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을 인지했다. 몸이 잘 붓고 손발은 차고 몸의 순환이 잘 되는 타입도 아니라 늘 몸이 무거웠다. 잠깐 짬이 나서 빨래를 하러 집으로 갈 때도 시간이 아까워 택시를 타게 되었다.


그 전만 해도 꽤 오래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맨손스트레칭과 운동을 하는 것이 루틴이었다. 출장 가서 눈도 못 뜬 채로 스트레칭을 하다가 자고 있던 여자 대표를 발길로 걷어찬 기억도 있다. 20대 초부터 클라우디아 쉬퍼의 오래된 영상을 친구에게서 받아 외우고 나서는 그중 필요한 동작들을 몇 개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병원에서 일어난 그날도 무심코 일어나 엄마보다 반쯤 낮은 레벨의 보조 침상에서 하지와 상지를 접어 하복부를 자극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가 문득 털썩- 바닥으로 사지를 대짜로 떨구고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리곤 기가 막혀 눈물이 났다.



나라는 년은 기필코 엄마가 없어져도 잘 살 년이로구나. 내가 지금 암투병하는 엄마 옆에서 복근운동을 하고 있구나. 진짜 어이가 없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죄책감에 휩싸여있을 때였다.


엄마는 원래 어떤 음식도 바깥 용기에 먹지 못하게 했다. 살던 대로 산다고, 늘 그릇에 먹음직하게 담아 먹어라 하셨다. 정작 자기는 호록 호록 늘 싱크대 앞에서 국에 만 밥을 마시듯 먹었으면서.

나 역시 병원에서는 최대한 대충 먹었다. 편의점에서 멋대로 집히는 대로 집어온 장난감 소품 같은 음식들을 10분 새에 먹었다. 데우지 않은 삼각김밥은 까슬한 혓바닥에서 플라스틱처럼 나뒹굴고, 훈제란은 탱탱볼을 씹는 것처럼 아무 맛이 안 난다.


나는 이렇게 나를 얄팍하게 벌주는 걸로 위안 삼았다.


그래서 엄마 수술실 앞에서 면도기를 내밀며 제비초리를 밀어달라던 아버지를 증오하듯 노려봤겠지. 아버지는 그저 아내가 아파서 남편 꼴이 말이 아니다는 얘기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 짝꿍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가게에서 수제햄버거를 가져다줬다. 종이봉투에 담겨 모락모락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고마운 음식이었는데, 추운 날 음식이 식을까 봐 택시를 타고 한달음에 가져다준 걸 조용히 앉아 씹고 있던 나는 밖으로 표현 못할 현타가 왔다. 먹는 동안 '오 고기가 고소하네, 치즈도 있고-' 그 잠시는 햄버거 맛에 몰입했던 거다. 햄버거를 잘 먹다가 삽시간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 순간순간들을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기복이었다. 모든 것에 어리석은 판단을 하던 시절이다.


삶과 죽음은 이음동의어다. 그저 표현을 달리 할 뿐.

윗몸을 일으키던 나도 엄마처럼 열심히 성실히 죽어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저 죽음과의 거리가 가깝고 먼, 타이밍의 차이였을 뿐.


그 과정에 윗몸을 일으키든 햄버거를 집어삼키든 무슨 상관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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