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니톨, 그거 얼만데 그걸 못줘?

2017년 11월 21일의 기록

by JuneK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갈 땐 엄마도 나도 대기하는 내내 긴장한다.


검사하러 갈 때 입는 환자복이라는 것이 풀을 먹여 날을 세운 것 같이 바스락 거려서 몸을 따듯하게 감싸는 촉감이 아니기도 하고, 병실의 온도를 생각하고 있다가 보통은 난방이 되지 않는 검사실로 넘어오는 복도를 걸을 땐 서늘한 찬기가 몸속을 예고 없이 스민다.


나는 경황이 없어 맨발, 엄마는 치료를 위해 맨발인데 조사실 앞까지 양말을 신기면 통제 구역 안쪽에서 간호사가 양말의 앞코를 잡고 당겨 벗기는 게 싫다. 뒤꿈치가 쿵 하고 떨어지는 순간, 예민한 내 감정촉수는 분노 방 앞을 서성이다가 '때는 이 때다.'라는 심정으로 '뭐 기분 안 좋으신가 봐요?' 라며 분노를 가득 눌러 잠가놓은 방문을 기꺼이 까부수고 마는 것이다.


오늘은 엄마가 다니던 절의 스님이 오셨다. 방사선 치료를 결정한 일이 자신이 없고 이기적인 것만 같아 답답했고 엄마한텐 일말의 용기가 되어줄 수 있을까 싶어서 다급하게 스님에게 전화를 드렸었는데 치료 후에 올라오니 한달음에 오신 스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엄마는 스님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고, 기도와 대화가 이어졌다. 엄마에게 절과 스님은 대나무숲 같은 존재였을 테니. 내가 줄 수 없고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한참을 자리를 피해있었다.


짬이 난 김에 병원비를 중간정산 했다. 보험적용이 되더라도 병원비가 적진 않다. 주급으로 정산하니까 할부도 의미가 없다.


수납을 하고 올라와 갈 곳을 잃고 방황하다 결국 병동으로 돌아온다. 병실에 있는 게 아니라면 주로 계단에 앉아있는 게 편하다. 바깥 휴게실은 온통 아픈 얘기, 누군가에게 서운한 얘기, 힘든 얘기가 너무 잘 들리기 때문에 온전히 쉬기가 어렵다. 계단에 앉아 좁은 난간 새를 내려다보며 층수를 센다.


돌아가보니 이미 스님은 가시고 엄마는 한층 더 단단해 보인다. 편안해 보이기도 한다.


지금 엄마는 뇌압 조절이 관건이다. 종양 자체뿐만 아니라 주변으로 부종이 계속 생기기 때문에 뇌압이 높을 수밖에 없다. 뇌압을 점점 더 자주 느낄수록 좋지 않은 신호임을 알고 있다. 뇌압을 낮출 목적으로 삼투성 이뇨제를 쓴다. 삼투압 원리를 이용해 뇌 쪽 수분을 혈관으로 빼주며 뇌압을 낮춘다. 두통에 고통스러워하다가도, 만니톨이 들어가면 엄마가 편안해하니까 어쩔 수 없이 약에 의존하게 된다. 메모를 트레킹 해보면 약효가 3-4시간 사이에 소진된다. 자기 전에 맞고 잠을 청하다 다시 두통이 시작됨, 바로 약을 달라고 해도 줄 리가 없으니 내 선에서도 참게 된다. 그렇더라도 분단위로 일그러지는 엄마 표정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간호사 데스크를 10분 간격으로 4-5번 정도 가면 새벽 2-3시쯤 담당의사가 유선상으로 오더를 내린다. 결국 담당의사도 깨우고 주사를 맞고 나서 다시 겨우 잠이 드는 식이다. 부작용을 염려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약을 쓰는 게 너무 옹졸해서 매번 싸운다,


만니톨이 얼만데 그걸 아껴! 아픈데 왜 약을 안 줘! 당신이 저 고통을 알아?


내가 무식한 건 알겠는데 그럼 왜 자주 못쓰는지 설명을 해달라고 해도 그 정도 에너지는 못쓰는 것 같다. 결국 찾아보니 예측하기 어려운 부작용 때문에 염려하는 것이다. 엄마 체중에 최대 5회 정도가 한계다. 그렇지 않으면 전해질 이상이나 저혈압, 폐부종이 생길 수도 있다.


어제 검사결과로는 뇌수를 따라 종양세포가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종양상태가 아니라 뇌수를 타고 흐르고 있다면 빠르게 차오르는 뇌부종이 설명이 된다. 엄마는 너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걸까?

매일 반복되는 새벽 만니톨 투약 전쟁이 끝나고 나면 나는 벌게진 눈으로 잠을 청한다.


두서가 없다. 오늘은 구토가 한 번밖에 없었다. 순조로웠다고 해도 되는 건가.

엄마 발을 씻기고 있으니 새삼 뽀얗다. 늘 뒤꿈치가 갈라지는 일을 걱정하던 엄만데, 나의 데일리 케어 덕분에 발은 미인이 되어있다.


다 좋으니까 머리만 안 아팠으면 좋겠다. 오늘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