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숙주가 되어줄 것

엄마가 나약한 딸에게 내린 특단의 조치

by JuneK



십일월 이십오 일


이천십칠 년도 한 달 남짓 남았다. 비와 눈이 섞여 제멋대로 내리는 십일월의 토요일. 파스냄새를 참 싫어하던 엄마, 파스 냄새를 풍기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 만큼 엄마 두통에는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우면 피가 머리로 몰리니까, 주로 엄마는 앉아있는다. 거동이 쉽진 않다 보니 침상에서 흘러내리면 다시 엄마를 조금 올려주고 자세도 바꿔주는 게 중요하다. 요령이 없어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오면 잠깐 굽히고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워낙 싸움닭이었다 보니, 부탁도 쉽지 않다. 우리의 지난날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으니까. 오늘은 간호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기가 싫어서 내가 55킬로의 엄마를 이렇게 저렇게 들어 올리고 돌리고 뉘이고 했는데, 허리에 파스를 잔뜩 붙였다. 무식하다. 오래 버텨야 하는데 이건 무식하다.


엄마를 낑낑대고 드는데 엄마가 웃으며 안쓰러워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내가 더 미안하다.

내가 이렇게 모가 난 딸이라 미안하다.


지치고 힘들어져야 겨우 잠을 청한다.

엄마가 눈을 떠 쳐다보길래 웃었더니

희미하게 웃는다. 힘들면서도 웃어준다.


삼투압조절로 몸의 수분을 빠지게 하는 약도 효과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무섭고 힘들다.

엄마랑 대화한다는 것조차 이렇게 욕심인줄 알았다면.

더 다정다감한 딸이었을까.



십일월 이십칠 일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다.

일찌감치 두통이 초저녁부터 있어서 뇌압조절약을 7시 반쯤 맞았다.

고요히 잠든 엄마의 평화는 안타깝게도 세 시간 남짓.


열 시부터 다시 시작된 두통을 내 반대편으로 엄마를 뉘이고 계속 모른 척했다.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무작정 약을 줄 수도 없으니

지켜보며 괴로울 나의 짐을 조금은 덜어보는 것.


결국 팔을 휘젓는 고통에 1시께가 넘어 다시 간호사 선생님에게 진통제를 부탁했는데, 급한 대로 약효가 좋지 않은 엉덩이 주사를 맞는다. 케토로락이라는 효과 있는 약제는 처방이 필요한데, 당직의사의 잠 때문인 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말들만 해댄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굉장히 취약한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대거리할 기운도 없을 때 분노가 안에서 치밀어 손끝으로 뻗친다. 내 허벅다리를 후려쳐보기도 하고, 발 뒤꿈치를 세게 굴러보기도 하는 말 그대로 자학을 하는 것.


결국 조용히 왜 처방이 안되는지, 이유를 묻고 케토로락은 맞을 수 있게 되었는데, 다시 엄마의 간이 걱정이다. 엉덩이 주사로 진통제를 맞은 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고민이다.

다시 화가 난다.

엉덩이 주사 놓지 말고 기다렸으면 지금 케토로락 맞을 수 있는 건데.

왜 이렇게 하는 거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들만 터져댄다.


결국 엄마를 달래서 재우고, 케토로락은 잠시 미뤄둔다.

다시 아프다고 잠에서 깨면 그때 줘볼 생각이다.


엄마 엉덩이가 욕창일지도 몰라서 신경 쓰인다.

스무날 남짓을 앉은 자세로 눕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그걸 고려하지 못한 내가 되려 바보다.

뇌압을 낮추려고 앉아있던 게 화근이었다.


내일은 에어매트를 신청하고 시트도 새로 정리할 거다.

늘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지만, 뭐라도 해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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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고달프면 욕이라도 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잠으로 도망치는 게 중요하다.





늘 잠에 술처럼 취해 있던 날들, 나는 도망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하다.


자가발전하고 있지 못하다.

누가 날 좀 일으켜 세워줬으면 좋겠다.

이제는 그만 외부에서 수혈받으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 누가 채우는 게 가능하다면 그건 나 자신뿐이라고.


부모에서 남편으로 남편에서 자식으로 빨대를 옮겨 다니며 살고 싶지 않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의 엄마는 내 인생에서 없어지는 특단의 조치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