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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Jan 12. 2024

결론 내리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과정, 토론

토론의 의미와 필요

 토론하면 나는 여전히 100분 토론을 떠올린다.

나 역시 토론을 학문적으로 배운 일이 없고,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에는 토론이란 상대와 싸워서 이겨서 굴복시키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 제대로 정확히 알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학 재학 시절 가장 궁금하고 부러웠던 강의는 성신여대 손석희 교수의 "말하기와 토론"이었다. 


무섭게도 그의 강의계획서에는 이 강의가 너무 힘들고 과제가 많은 관계로 '말하기와 토하기'^^로 소문났다고 들었습니다.로 언급되어 있다 ㅎㅎ

손석희 교수의 2009년 말하기와 토론 수업계획서


재밌는 얘기로 시작했지만, 그의 강의 계획서에는 토론에 대한 정의와 목적 등이 모두 들어있어 인용한다.



비판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비판하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말로 소통하는 사회에서 보다 더 합리적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토론은 늘 지적 긴장감을 주는 것이고
이 수업에서는 그 긴장감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


연말연초를 모아 여러 만남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달라진 점은 내가 더 이상 '주장'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쩐 일인지 모든 말이 일리가 있고 모든 것에 의미가 있었다. 옳은 게 있으면 그른 게 있는 것인데, 어쩌다가 너도 옳고 나도 옳게 되었을까?


우리에게는 "진짜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두 각자 원하는 채널 앞으로 가, 내가 듣고 싶은 얘기만 잔뜩 들으며 끄덕이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한 환경 때문이다. 나는 때로 이 상황이 무서울 때가 있다. 내가 믿는 것을 보다 더 견고히 하는 불통의 꼰대가 될까 봐 무섭고 두렵다. 


보기는 불편했어도 차라리 100분 토론을 가부좌 틀고 앉아 씹어가며 진득이 들어야 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토론이라는 것이 인상 쓰고 악만 질러보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11시 5분, 11시 50분 등으로 토론 프로는 점점 편성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듣기 불편한 소리를 해대는데, 재밌는 예능으로 시청률 올릴 수 있는 기회를 굳이 나눠줄 이유가 없다. 


토론에 직접 참여하면 더 적극적으로 느낄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서로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남는 것이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상식적인 판단에서 말이 되는 얘기는 진심을 다해 들어주고, 합리적으로 설득되었다면 수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런 안전한 토론 문화의 장치 안에서 진영이 다르고 의견이 달라도 서로 나이스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 사람들이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홍준표와 유시민, 나경원과 노회찬, 신해철 등 내가 기억하는 토론 히어로들을 떠올려본다. 나는 지금 나를 둘러싼 모든 일들에 대해 이 히어로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다. 그런 맥락에서 더 이상 신해철이나 노회찬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상당히 슬픈 일이다. 나보다 더 사안에 대한 고민이 깊은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의 합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비판들이 오가는 현장을 목격하고 싶다. 


아무리 손석희, 그의 수업이 말하다 토하는? 정도의 수업 강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기꺼이 찾아 듣고 싶을 정도의 간절함이다. 


그래도 기쁜 일은 일상에서도 긴 대화를 지루함 없이, 무비판적 수용 없이 나눌 수 있는 벗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 그저 기쁘고 고맙다. 언젠가 더 이상 열려있지 못할 정도로 태도도 생각도 굳어지고 나면 내가 듣고 싶은 소리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아주 슬픈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살아있지만 감옥에 갇힌 듯한 미래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결론이 없는 토론을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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