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보내진 것이다.

을지로 옥탑 나의 첫 작업실에서 쫓겨난 이야기

by JuneK



얼마 전, 괴롭게 영어로 인터뷰를 보고는 너덜너덜 해져서는 작업실로 돌아갔던 날. 옥탑에서 1년 남짓 시간을 함께 의지하며 지내던 이웃에게서 기쁜 소식을 들었다. 둘이 열심히 일하다 동료가 생겨 셋이 되었고, 그렇게 버텨낸 시간만큼 공간을 넓힐 기회가 생겨 우리가 함께 바라보던 남산에 조금 더 가깝게 자리한, 여건 좋은 건물로 옮긴다는 이야기였다. 잘 해낸 사람들의, 축하받아 마땅한 소식이었다.


그날 하루는 진심으로 기뻤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다.


나는 사실 씩씩한 척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6층 옥탑, 지역 특성상 남자들이 많은 공구상가 거리, 4층에 따로 있는 공용 화장실. 그 환경이 아주 편안했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그곳이 괜찮았던 이유는, 그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데다, 늘 대화가 즐거운 친구와 여유만 있다면 언제든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추운 겨울밤, 도어락이 망가져 겉옷도 없이 핸드폰만 달랑 들고 옆집에서 몸을 녹이며 열쇠기사님을 기다릴 수 있었다. 홀로 일하는 나였으나, 마치 회사를 다니 듯 연말 종무파티도 함께 하며 서로의 경험과 포부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의 기분으로 시간을 보냈다. 재택 비율이 높아 띄엄띄엄 불이 켜지는 스튜디오 한 곳이 있었고, 바로 옆 이웃은 늘 성실하게도 등대처럼 매일같이 을지로 6층 옥탑의 불을 밝혀주었다. 유독 성실했던 그 등대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있을 때는 몰랐던 존재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차를 많이 마시는 생활을 하는 나에게 분리된 화장실 조건 역시 불편한 것이었다. 10월 말에는 동료들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소란도 있었다.


언제든 전화할 수 있는 짝꿍이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순간적으로 스치는 무서움이 그들이 떠난다는 소식과 함께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화장실에 간다며 통화를 부탁하거나, 퇴근 중이라며 전화를 이어가자고 하는 자잘한 부탁들 속에서 그 불안을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런 역할 덕분에 나는 을지로 옥탑의 조금은 거친 낭만을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의지할 구석 하나 없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한순간에 겁쟁이가 되는 나를 보며, 이제는 센 척도 적당히,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공들여 분위기를 만들며 정을 붙였던 나의 첫 작업실을 내어놓기로 했다.

네이버 큰 카페에 글을 올렸고, 옆집 대표님의 먼저 올린 글을 참고 삼아 최대한 불안을 숨긴 채 담담하게 상황을 적었다. 공들인 시간이 아쉬워 옥탑 주제에 기본 설치 비용을 권리금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보증금만큼 덧붙였다. 누가 옥탑 골방에 무독성 페인트를 바르겠느냐고 하겠지만, 그게 나다. 나를 끔찍이도 아끼는 나다.


그렇게 올린 글을 보고, 당일 두 번째로 공간을 보러 온 사람이 아직 내 마음이 갈등하던 차에 가계약금을 내고 들어오겠다고 했다. 당황한 나는 지금은 하지 말고 오후에 연락을 달라며 그를 돌려보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친구는 나에게 이런 계약 경험이 없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맞다, 없다.) 그리고는 그렇게 보내면 그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인연 될 사람을 붙잡았어야 한다고. 과연 그 말이 맞았다. 내가 미적거리는 동안 그는 더 좋은 공간을 봤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볼일을 보는 사이 그는 다른 곳에 계약을 했고 아쉽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그즈음 그렇게 몰아치던 문의도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친한 지인의 부군이 은퇴 후 사랑방으로 쓰겠다며 보고 가셨던 날도 비슷했다. 좋다고 하셨지만, 얼마의 설치비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내가 다시 머뭇거리는 순간, 그 인연도 흘러갔다.


그렇게 둘을 떠나보내고 나니, 엄습한 불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공간에 대한 정과 애착보다 불안이 커지자, 나도 불안해졌고 결국 당근에 한 번 더 글을 올렸다. 업로드하자마자 한밤중이었는데도, 공간도 보지 않은 채 가계약금을 보내겠다는 청년이 나타났다. 다음 날 오전에도 공간은 보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일단 가계약금 10퍼센트를 내겠으니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가 찾아왔다.


와서도 내가 봐도 불안하게 건성건성 둘러보더니 하겠단다. 이상하게 더 불안해졌다. 왜 이렇게 서두르지. 권리금도 있고 제약도 많고, 화장실도 밖에 있다, 꼼꼼히 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는 그냥 하겠다고 했다. 이쯤 되니, 내가 결정하는 쪽이 아니라 쫓겨나는 심정이었다.


그가 한 유일한 부탁은, 소위 골 때리는 것이었다. 벽에 붙어 있는 서예 글씨들을 놔두고 가 달라는 것이었다. 무겁게 힘들게 올린 가구는 다 가져가도 되는데, 그 글씨들만은 남겨달라고 했다. 너무 황당해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소싯적 하던 서예를 이 공간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고, 글씨가 붙은 공간이 매물로 나오자마자 ‘아, 내가 여기로 오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그날 나에게 충고했던 친구에게 전했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 왔었어. 진짜 한대. 글씨를 두고 가래!”

그랬더니 그녀가 말했다.

“내보내지는 것 같은데?”


그 말에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가 다시 서예를 시작하기로 한 그 결심의 힘에 밀려, 내가 이곳에서 내보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어떤 일들은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쁜 일이 연이어 겹쳐 뭐라도 방편을 써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꼭 봤으면 좋겠다. 그 모든 일은 어쩌면 누군가의 움직임과 의지, 꿈으로 다가가는 힘에 밀려 잠시 파도를 타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 파도에 올라타 내보내지면 그뿐이다.


나는 그의 서예 2막의 시작을 위해, 그렇게 돈화문로 언저리에서 내보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벅차다. 누군가의 붓을 드는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면, 나는 기꺼이 밀려 밀려 어디론가 갈 것이다. 나 또한 강한 의지를 내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며 밀려가겠지.


다소 대책 없고, 내 멋대로, 내 마음 편한 결론이다. 그래도 오늘은 글을 쓰마 한 그녀와의 약속이 있었기에, 오랜만에 이렇게 글을 쓴다.


p.s. 아마도 회현동 420호는, 그녀의 방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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