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
지난주 제주로 Runtrip을 다녀왔다.
요가와 티를 리딩하는 파트너로서 나름의 미션이 있었음에도, 제주로 향하는 이유가 나 스스로에게 명확했던 건 아니다. 눈앞에 밟히는 다양한 현실들이 핑계로 남았다. 다만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게 될 것 같다는 예감만은 분명했다. 일정이 정해지자마자 생각하지 않고 티켓을 끊은 건 그래서였다.
회사에서 처음 팀장을 달고, 아직 모든 게 서툴던 시절에 만난 S선배가 있다.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선배는 골프를 배울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자기만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동의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앞서거나 설득하기보다 묵묵히 응원하는 쪽에 가까운 태도. 그런 선배가 인생의 다음 챕터를 준비하며 ‘슬로조깅’이라는 키워드를 꺼냈다.
얼마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고, 그렇게 알게 된 즐거움을 혼자만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졌다고 했다. 그 과정에 요가와 티가 함께하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안 자체가 고마웠고, 무엇보다 ‘재밌을 것 같았다’. 현실은 여전히 팍팍했지만, 그 팍팍함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선택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기대한 건 사실 ‘제주'라기보다, 선배가 모은 ‘사람들’이었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해장국으로 새벽부터 바지런을 떠느라 허기진 배를 채우고 처음 들른 곳은 사이서가라는 서점이었다. 북스테이도 가능한, 책과 집필을 위한 공간.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소개하며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가 살아온 세계를 꺼내놓는 자리였다 보니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누구 하나 겹치지 않는 관심사와 삶의 궤적이었다. 이렇게 다른 세계들이 한 테이블에 모이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몹시 신기했다.
공항에서부터 느꼈던 유쾌함은 그 테이블에서 확실해졌다. 제주에 온다면서 김포 국제선 출국장에 줄을 섰다가, 싸한 기분에 정신 차려 국내선으로 전력질주했던 내 이야기를 꺼내자, 다들 각자의 허당 에피소드를 하나씩 보탰다. 그렇게 우리는 빠르게 서로의 경계를 내려놓았다.
어느 집단에나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모임에는 각자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취향도, 말투도, 살아온 결도 달랐지만 어색하지 않고 조화로운 점이 신기한 일이다. 새삼 선배의 안목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준 데 대한 고마움이 런트립 기간 내내 마음에 남았다.
둘째 날 아침, 러닝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또 다른 시간이 이어졌다. O리더가 진행한 강점 찾기 워크숍이었다. ‘Be yourself’라는 메시지는 무엇이 더 나은지가 아니라, 이미 가진 나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이틀 내내 진행된 메인 활동, 러닝 리더 M님의 프로그램 역시 인상 깊었다. 초보자를 위한 간단한 드릴부터, 달리기 전후 몸을 다루는 법까지. 덕지덕지 붙어 있던 일상의 시름과 잡생각이 달리는 동안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경험을 했다. 아주 오랜만의 러닝에 몸은 어색해했지만, 서울보다 10도는 따듯한 제주 공기 덕분에 이상한 해방감을 느꼈다. 달리면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러닝 후에는 스트레칭을 리드했다. 매트도 없이 바닥에 몸을 굴려야 했지만,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다.
밤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서로의 세계를 나누느라 잠을 미뤘고, 이틀의 밀도는 예상보다 높았다. 특히 둘째 날, 이른 저녁을 먹으며 각자 자신의 시 한 편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왜 그 시를 골랐는지, 그 문장이 어떤 시기를 통과해 왔는지를 듣자 대화가 한층 풍요로워졌다.
나는 급히 제주를 떠나느라 시를 공유하지 못했다. 대신 이 글을 통해, 그때의 멤버들에게 이 시를 남기고 싶다.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 박현수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내가 읽던 이 구절은
숲의 어느 부분에 새겨져 있을까
자작나무 밑동쯤일까
잔가지 겨드랑이쯤일까
숲은, 인간의 말들을
어디쯤 철 지난 현수막처럼 걸치고 있을까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밑줄 그은 이 구절,
나무의 살갗에 새긴 문신은 흐려질까
한 땀 한 땀마다
솟아났던 푸른 울음들은 새살 돋을까
숲은, 가시철사처럼
파고드는 문장들을 뱉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제 소리를 갖지 못하는 이 구절은 사라지리라
매미, 쓰름매미,
숲에는 제 이름으로 노래하느니
숲은, 탈피 껍질처럼 텅 빈
인간의 문장들을 빗방울처럼 떨쳐 내리라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순간처럼, 언어가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말로 정리되지 않는 상태 그대로를 허용하는 것. 이번 제주에서의 시간은,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모임은 동호회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만난다.
같은 취향, 같은 목적, 같은 이야기를 전제로 한다. 이 모임은 오히려 그 반대, 서로 같아질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더 풍요로웠다는 것이 재밌는 일이다. 비동회(非同會)라 부른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