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 you for your service."
다세대 주택 2층에 살던 시절, 내 방은 집 가장 안쪽, 부엌 옆에 있었다. 이부자리를 개고 책상 너머로 창문을 드륵- 열면 옆집 밥 짓는 냄새, 회색빛 기와지붕이 맞아주는 그런 풍경이었다.
집에서는 국기 담당이었기 때문에 자다 만 눈을 뜨고 목재로 된 상자를 열어 국기를 게양하는 게 공휴일의 나의 역할이자 의무였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단위의 군대처럼 가정을 운영한 군필자 부친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6월 6일은 그 국기를 다는 위치가 달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대도 그게 다였다. 그저 학교 안 가고 노는 날이니 좋았고 이따 용돈 타서 슈퍼 가야지 정도로 설레던 날.
군인은 늘 ‘아저씨’였고 고사리 손으로 쓰는 편지로 위로가 되는 불쌍한 사람들이었으며 곧 군대에 갈 주위 청년들은 안타까움의 대상이었다. 2000년대를 넘어오며 제작되었던 수많은 뮤직 비디오들은 전쟁 중 혹은 후에 겪는 에피소드들을 다뤘고, 곧 흥행보증수표 같이 여겨졌다. 또 한편 무력으로 정권을 잡고, 29만 원이 전 재산이었던 사람도 군인이었다. 우리에게 군인은 꽤나 복잡한 대상인 것 같다.
하지만 대학시절 카투사였던 동아리 선배는 조금 다른 얘길 해줬다. 어디든 미국사람들은 군인을 향해 존경을 표시한다고. 언제든 그 희생에 대한 감사로 택시를 그냥 태워준다거나, 음식 값을 받지 않는 것으로 그 감사를 대신 표현 한다거나 길에서 만났다면 진심의 인사를 건넨다는 것도.
“Thank you for your service.”
결국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한동안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
결국 개인이 뿌리내린 문화와 경험은 태도에 반영된다. 총기소지는 불법임에도, 국민의 절반은 사격을 제법 잘하는 스펙을 갖춘 군필자들이 동네 주민센터를 지키는 나라.(재능 낭비로 다들 잠옷바지 입고 방구석 모니터 앞에서 배틀그라운드를 할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의 노력을 들인 시간에 대해 충분히 존중받고 있는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능력을 가져버린, 그러느라 인생의 일부를 저당 잡힌 시간을 지내온 사람들 스스로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