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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우리는 시간, 마음을 우리는 시간

누구를 위해 마음으로 차를 내려본 적 있나요?

by JuneK

보이차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좋은 향을 사린다.

마음에 드는 찻잔을 준비한다.

따듯한 물로 다구들을 예열한다.

예열된 차호에 보이 찻잎을 넣고 100도씨로 끓여낸 물을 부어 윤차 한다.

다시 차호에 물을 부어 충분히 우려진 차를 모두 공도배로 옮긴다.



윤(潤) 차 한다는 말은 세차와 동일하게 쓰이지만, 불순물을 씻어 세척한다는 의미의 세차보다, 차를 불려 깨우고 맑게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보이차는 어느 정도 숙성을 거친 노차의 경우 여러 번 우려 마실 수 있는데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 횟수나 우리는 시간도 모두 다르다. 하루를 여는 아침에는 땅속 깊숙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흙내음이 배어 나오도록 진하게 우려 마시기도 하고, 술과 함께 차를 마실 때에는 연하게 여러 번 마시기도 한다.

이른 새벽,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으려고 노력하며 차를 우려 마시고 지나간 어제와 다가올 오늘을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동요하는 마음이 제법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보이차도 커피처럼 누가 우려내느냐에 따라 그 맛이 아주 달라지는데, 과정에 집중하고 서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2007년에 개봉해, 슬로라이프의 의미와 가치를 보여주었던 북유럽 배경의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이 떠오른다. 일본에서 헬싱키로 넘어와 일본식 오니기리, 커피, 시나몬 롤 등을 파는 조그만 일식당을 오픈한 야무진 일본인 여성 사치에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어느 날 식당으로 한 중년 남자가 찾아와 커피를 주문해 마시고는, ‘이미 이 커피는 맛있지만 더 맛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사치에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 그 중년 남성은 원두를 적당량 덜어 그라인더에 갈고, 세 스푼의 커피를 넣고 검지를 올려 ‘커피 루왁’이라는 주문을 건 뒤 커피를 내린다. (정확히는 ’코피-루왁‘으로 들린다.) 새로 내린 커피를 사치에에게 내 준 남자. “커피는 다른 사람이 타 준 게 맛있는 법이죠”라고 말한 뒤 사라지는데, 놀랍도록 달라진 커피 맛에 한동안 멍하게 커피를 음미하던 사치에는, 같이 식당을 돕는 미도리에게 같은 방식으로 커피를 대접한다. 그녀 역시 원두를 바꿨냐고 말하며 달라진 커피 맛을 알아본다. 신기한 일이다. 바뀐 건 주문을 외우는 과정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인데. 곱씹어 보니 결국 맛있는 차와 커피의 비결은, 상대를 위한 진심과 정성을 담는 것 그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단 얘길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몇 해 전 좋은 차를 함께 나눠마시는 기쁨에 대해 깨닫는 귀한 기회를 얻었다. 허리와 어깨를 펴 자세를 고쳐 앉고, 물을 다루고, 차를 다루고, 함께 마시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공간에 좋은 기운이 흐르도록 차를 정성 들여 우리고 찻잔을 채워주는 일, 찻자리에서 차를 우려 내어놓는 팽주의 역할은 진심과 정성, 세심한 살핌이 필요하다. 늘 찻자리에서 힐링을 느끼는 이유는 차를 우리며 마음까지 우리는 누군가의 배려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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