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운동화 한 켤레
2011/06/05
얼마 전 흰색 레이스로 된 플랫슈즈를 샀다. 애정하는 드라마 여주인공이 힐을 신고 호텔 로비에서 흐르는 공기마저 불편한 맞선을 본 후에 맞선남의 차를 얻어 타고 혜화역에서 내리자마자, 가방에서 흰색 레이스로 된 플랫슈즈로 갈아 신고는, 날아갈 듯 사뿐사뿐 걸어 연하남을 만나 연극을 보고 떡볶이를 먹는 데이트를 한다.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그녀가 운영하는 쇼핑몰을 찾아서 아무런 고민 없이 클릭 후 구매. 아마 신발이 아니고 그 장면 자체를 사고 싶었던 것 같다.
문제는 신발이 너무 예쁜데 발에 맞지 않아 자꾸 물집이 생기고 아팠다. 미련하게도 신다 보면 괜찮겠다 싶어 바꾸지 않았다. 나보다 큰 남의 발을 빌려 늘려보기도 하고 앉아 쉴 수 있는 곳에서는 되도록 벗고 있으려고 노력도 했다. 그 신발을 신고 발에 힘을 주어 걷기만 하면 아픈 그곳이 물집이 생기고 터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혹처럼 부어올랐다. 이제는 어떤 신발을 신어도 그곳이 아프다. 억지로 신발을 신겨 족저근막염이 진행되었나... 내 발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속상했다.
얼마 뒤에 길을 걷다 아주 비슷한 느낌의, 심지어 훨씬 싸고 발의 어느 곳도 조이지 않는 새신을 얻었다. 날아갈 것 같이 편하고 좋은데 왜 한편 마음이 이렇게 불편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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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가 이제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한다. 아마도 티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까지 다양한 플랫폼에 치이고 뜯겨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겠지. 거의 10년 넘게 이글루스에 일기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문득 생각이 나 로그인을 해서 201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이 때도 신발 산 얘기 보단 사는 얘기를 쓴 것이겠지. 소름 돋게 놀랍고 황망했던 일은 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변하지 못한 채 그때 방식 그대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 관성이 놀랍도록 강해서 어제 썼다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모든 문제를 이런 식으로 마주하고 있다. 나의 안위는 아랑곳없이 '더 할 수 있다.', '더 노력해.', '더 잘할 수 있어.'라고 내면의 소리는 무시한 채 다그친다. '그럴 리가 없다.', '힘들 리가 없다.', '이 정도는 견뎌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몸과 마음이 편해질수록 불안을 느끼고 의심을 한다. 보이기에 예쁘니까, 발 따위 족저근막염이 생기든, 절게 되든 몸의 균형의 망가지든 그건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이걸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나. 불가능한 일이다. 보들하고 톡톡한 양말 한 켤레와, 반치수쯤 크고 적당히 폭신한 운동화 한 켤레 사 줄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알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