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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한 할머니의 공격적 투자

늘 배움이 고픕니다.

by JuneK

찾아보니 재테크의 뜻이 '재무테크놀로지'의 준말이며 심지어 이 단어 그대로 국립 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어휘라고 한다. 늘 쓰는 단어지만 한 번도 조합어라고 생각하지 않은 채 고유명사로 대했던 단어다.


재테크는 어느 시점까지는 나와는 상관없는 단어로 느껴지다가, 월급을 받기 시작하고 머리가 굵어지던 시점부터 '아, 이것도 나의 일인가.'라고 다소 안일하게 받아들였던 거리감 있던 단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아니오."라고 말할 거다. 혹은 "운이 좋았다."라고 하겠다.

아무것도 모르던 초년생 시절에 외국기업에서 일하던 친구에게 기름주식에 대한 전망에 대해 들은 일이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귀담아듣진 않았다. 월급을 벌기 시작할 무렵부터 저축을 기계적으로 하고 그 돈은 쓰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있었던 게 다행이었던 걸까. 무식하니 용감했던 나는 지금 생각해도 적지 않은 금액의 목돈을 모두 기름주를 매수하는 데 썼다. 공부도 안된 상태로 그냥 주워들은 최초의 정보를 믿고 실행했던 것뿐이다. 그 결과는 가히 엄청난 것이었는데, 차트를 볼 줄 모르기도 하고, 매도 타이밍을 잡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사는 게 바빠 계좌 비번도 잊은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보니 1년 여 만에 한 주에 6만 원이었던 주식은 15만 원이 되어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연봉을 훌쩍 넘는 수익을 손에 쥐고 보니 매일 출근하는 나와 나를 포함한 내 주변 모든 이들이 바보처럼 느껴지고, 한동안 방황하며 회사를 몹시 건방지게 다녔던 기억이 난다. 소가 뒷걸음질을 치다 쥐를 잡은 격이다. 그 당시 중국 따이공처럼 현금 다발을 들고 들어가 당당하게 백화점 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참 무식하고 용감했던 덕택에 쉽게 번 돈은 그만큼 쉽게 흘러나갔다.

단 한 번의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졌던 어설픈 성취의 기억은 돈을 욕망하게 하는 스위치에 불을 켰고, 다행히도 이후로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다양한 방식의 공부도 하고 여러 책들도 뒤적거리며 나의 재테크 성향도 알아가게 되었다. 이후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힘들었던 2017-2019년 사이에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뜨거운 감자였던 논란의 종목 셀트리온의 2년 간의 대탈출 작전을 겪으며 내가 주식이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뒷걸음질을 친 것 치고는 결과적으로는 주식으로 손해 본 일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굉장히 다행인 일이다. 큰 목돈도 쥐어보고 대탈출 이후에는 지금 굴리는 차도 현금으로 덥석 사게 되었으니(현금을 이렇게 쓴 일은 지금도 몹시 후회되는 일이다.) 정말 돌아봐도 운이 매우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주식 한탕 같은 것에는 이상하게 어떤 미련도 없다. 나의 성향은 불확실성에 굉장히 취약하고, 고리타분하게도 눈에 보이고 현재도 즐길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도 다행이다.

현재는 그림과 보이차를 모으며 그림을 두고 즐기고 익어가는 보이차를 마시며 흐뭇해하는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고루한 재테크를 하고 있다. 다만 가장 공격적인 투자처가 있다면 그것은 늘 나의 배움이다. 결국 나는 나 스스로를 키워 내가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결론이 일찍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매번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하는 나를 보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해, 모든 걸 만 시간을 채울 수는 없을 텐데.. 이런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여전히 배우고 싶다. 나의 단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연금복권이 되고 유학을 떠나는 것일 만큼 :) 떠올리면 배시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걸 보니 여전히 바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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