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똑똑이 만들어낸 최대치의 어리석음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어린 시절 학대와 폭력의 트라우마의 심화로 조현병을 앓게 된 작가와 정신과 의사를 주인공으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노희경은 늘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없는 나약함, 모순됨에 대한 탐구를 하는 사람이기에. 마음은 참 고되지만 당시에도 꼼꼼하게 드라마를 볼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사막에서는 밤에 낙타를 나무에 묶어둬, 그리고는 아침에 끈을 풀지. 그래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묶여있던 지난밤을 기억하거든.”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대사 중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분한 남자 주인공은 멀쩡한 침대를 놔두고 화장실 욕조에 이불을 깔고 잔다. 그 모습을 혹시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화장실 문에도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다. 괴로운 과거를 혹시라도 잊을까 언제든 상기하라고 경고하듯, 스스로 벌을 주기라도 하듯 건장한 성인 남자가 긴 다리와 모가지를 접어 신생아처럼 억지로 웅크려 잔다. 그 욕조 위쪽으로 밤 시간 동안 나무에 묶어놓은 낙타와 해가 뜨고 낮이 되어 끈을 풀어놓았지만 여전히 나무 앞에 서 있는 낙타기 대칭 구도로 나란히 그려져 있다.
명상 수업이 끝나고 오늘 수료하는 도반을 배웅하는 다과상 자리가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뭐에 쫓기 듯 나오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오도카니 비친 나를 바라보다 저 뙤약볕에 멍청하게 서 있는 낙타를 떠올렸다. 알고 있다. 괴로움과 고통은 다 내 생각 안에서 만들어졌다. 생각으로 상을 만들고, 그 상에서 괴로움을 충분히 만끽하며 논다. 그 상에 등장하는 어떤 것도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없다. 그곳에 있던 상대도 사라지고 없다. 그곳에 있던 나 역시 지금과는 몹시 다른 나다. 오직 그대로인 건 이제는 사실과는 많이 다르게 왜곡되어 그 자리에 묶여버린 나의 생각뿐. 여전히 필요할 때 초콜릿처럼 꺼내먹는 것 외엔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데도, 단 몇 초라도 공연히 그 생각으로 돌아가 기꺼이 해방되지 않으려 그 근처를 성실히 배회한다.
나무 앞을 지나 끝도 없는 지평선 너머로 천천히 한 걸음씩 옮기면 된다.(고 생각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