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같이 내 맘을 알아" 주는 너

브랜드 기획자의 업의 일지 #6. 큐레이션이 성공하기 위해 고려할 것들

by JuneK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좋긴 한데, 또 질리는 게 있어. 둘 다 가질 순 없잖아.



오래된 연인과의 얘기로 들리는가? 개인화에서 초개인화로 넘어가고 있는 우리 일상의 큐레이션에 대한 얘기다. 이젠 모든 것이 큐레이션인 시대다. 내 취향을 잘 맞추기는 하는데, 그래서 그 울타리에 갇혀버리는 느낌이다. 새로운 기회는 모두 차단된다는 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가장 상징적인 큐레이션은 여지없이 "스포티파이"다.

2015년이었던가, 같이 일하던 카피라이터가 VPN 우회까지 해가면서 스포티파이를 썼던 것을 기억해 냈다. (스포티파이는 2020년에 정식으로 한국 론칭을 했다.) 일단 미국 아이튠즈 계정이 있어야 했고, VPN을 활용해 가입하는 까다로운 절차가 있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얘, 진짜 귀신같아. 내 맘을 나보다 더 잘 알아.”


*귀신같은 ‘얘’ - 기술이 곧 브랜드 자산으로 자리 잡다.

이 대화가 선명한 이유는 그 이후로 나도 스포티파이에 상당 부분 종속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얼리어답터라는 것, 번거롭게 사용한 대신 “너 아직도 멜론 탑100 들어?” 같은 업신여김을 할 수 있다는 자기표현의 편익이 있었다는 것. 물론 한국 정식 론칭 이후로는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하고 새 계정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의인화가 되어버린 “얘”가 내 맘을 더 잘 알아차리면 알아차릴수록 새로움에 대한 불안과 갈망은 커져갔다. 그리고 아직 K-pop이 우리들만의 리그였던 시절에는 K-pop 추천 자체가 인색하기도 했다. (Input 대비 Output 개념으로 보면 당연한 이야기) 물론 사대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다. 이 귀신같은 추천은 Collaborative Filtering이라고 하는 협업 필터링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유저 A가 블랙핑크 + 뉴진스 + BTS를 좋아하고, 유저 B가 블랙핑크 + 뉴진스를 좋아한다면 B 역시 BTS를 좋아한다는 예상을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음악 취향을 가진 유저의 플레이리스트를 겹쳐보며 유사성을 찾아 패턴화 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픽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귀신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중의 취향'이라는 의미는 굉장히 주관적인 표현이라고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언급한 적이 있다. 대중이라고 생각하는 대중 역시 일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 그러니 멜론 탑100은 더더욱 무딘 큐레이션이라는 결론이 난다.(물론 멜론 역시 많은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유사성을 겹치기 시작하면 탑100이 아니라도 나와 비슷한 성향의 유저 플레이리스트를 엿보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출퇴근으로만 셈한다고 해도 하루에 2번 이상, 대량의 데이터가 계속 쌓인다는 걸 보면 무한정 고도화가 가능하다.


*시각적 즐거움 - 서비스 본질에 대한 높은 이해 1

스포티파이에서 노래를 재생할 때 화면 전체를 영상이 채울 때가 있다. 모든 곡이 그렇지는 않지만 최대한 가장 적절한 영상을 보여준다. 옛날 스카이라이프를 시청하던 시절 Mnet 채널을 보는 기분이랄까. 음악은 단순 귀로 즐기는 영역은 아니라서 공감각을 자극하는 스포티파이의 시도는 서비스를 보다 더 사람처럼 생동감이 느껴지게 한다.


*부드러운 호환성 - 서비스 본질에 대한 높은 이해 2

타고 있는 차량에도 가장 먼저 탑재된 서비스는 스포티파이였다.(지금은 애플뮤직도 제공하고 있다. 이런 발빠른 콜라보레이션 시도도 중요하다.) 스포티파이는 차량에서 듣던 노래를 운전을 끝내고 에어팟을 끼기만 하면 핸드폰이 넘겨받아 재생하는 연결 정도가 굉장히 부드러웠다. 나를 위한 DJ가 전혀 버퍼링 없이 나와 동행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때로 사소한 사용자 경험은 묘하게 울림이 있는 감동을 주기도 하니까. 애플뮤직은 이 연결 측면에서 다소 버벅거린다.(음질 때문에 참게 된다.) 그럼에도 초기 프로그램에 액세스 하기 위한 로그인 기능의 편의성을 보면 애플이 훨씬 더 사용성을 고려했다.(스포티파이는 아이디 비번을 차량 터치스크린으로 수동 입력, 애플뮤직은 QR코드를 지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원 자체의 질의 현격한 차이를 느끼게 되고(FLAC) 유선으로 연결하는 경우 그 차이는 더욱 크다. 이제 차에서도 편하게 애플뮤직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8900원이라는 월 정액 금액의 메리트도 있는) 시리를 불러 내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점에 스포티파이와는 이별하게 되었다.


우리가 “귀신같다.”라고 느끼는 적절한 지점은 어디일까?

내게 익숙한 음악만 추천한다면 흥미가 떨어지고 새로운 음악만 추천하면 보수적인 귀는 거부감을 느낀다. 내가 들어본 적은 없지만 좋아할 수 있을 법한 음악을 추천해야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스포티파이가 선택한 것은 노래 시작, 재생목록 듣는 것, 검색, 셔플, 일시중지 등 모든 활동으로 음악 데이터의 정의를 넓혀낸 것. 어떤 음악을 어떤 시간대에 1분을 재생했는지, 특정 키워드를 검색한 후 어떤 플레이리스트를 4시간 내내 반복 재생했는지에 따라 다르게 데이터를 저장한다.


스포티파이는 ‘음악’이라는 서비스 본질의 속성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고민한 결과물을 사용자들과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애플 디바이스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메리트가 있다. 유저가 아니라도 서비스의 행보를 주목하게 되는 점이 그들의 저력인지도 모르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