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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름이 뭐니?

브랜드 기획자의 업의 일지 #5. 브랜드 네임 개발

by JuneK

우리가 진실로 마음을 나누게 된 연인을 나만의 언어로 부르고 싶을 때 흔해 빠진 ‘자기야’ 같은 말로는 더 이상 성에 차지 않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릴 일이 뭘까? 애정을 쏟고 싶은 대상이 생겼을 때 본능적으로 우리는 그 대상을 나만의 의미를 담아 ‘명명(命名)하고자’ 한다.

명명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 사물, 사건 따위의 대상에 이름을 지어 붙이다.’로 즉, 생명을 불어넣어 비로소 존재하도록 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고심 끝에 생명을 불어넣고 나면,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무의미한 것이 비로소 나에게로 와 나만의 꽃이 된다.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우리는 모두가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게 ‘존재’하고, 사는 동안에는 그 명명된 이름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브랜드 역시 다르지 않다. 브랜드의 네임 개발 역시 경쟁 브랜드와 분별 가능하면서도 소비자에게 보다 매력적으로 친근하게 다가가야 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브랜드는 실체가 있더라도 명명되어야 비로소 존재하게 되며 그 이후 소비자들은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고대 상형문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기호가 존재했던 시절부터를 브랜드 네이밍의 역사로 셈한다면 거의 4천 년에 가까운 시간, 현재까지도 새로운 브랜드는 하루 평균 수백 개씩 만들어진다. 사라지는 속도보다 생겨나는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이 빠르기 때문에 ‘짧고 발음이 쉬울 것, 기억하기 좋은 표현일 것, 직관적인 의미를 내포할 것, 익숙하지만 신선한 느낌으로 고객에게 매력을 어필할 것, 우리가 영위하려는 영역과 연관성이 표현될 것’ - 과 같은 브랜드 네임의 기본 속성을 모두 충족하는 이름을 만들어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시절이다. 이런 현실의 부침들이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단순 상징으로써의 단어나 자음 철자 조합의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익숙한 단어가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의 고민을 통해 구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으로 네임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네임 개발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은 하나의 브랜드와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을 할 때 일관성 있는 기준을 만들어주는 ‘브랜드 가치 플랫폼 or Brand Identity System’이다. 브랜드의 지향점으로부터 핵심가치를 도출하고, 구성원들이 내재화할 수 있는 브랜드의 본질을 찾는다. 이 플랫폼을 바탕으로 일관된 의사결정이 반복되어 표현되고 소비자를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이 형성되게 된다.


브랜드의 네임 개발을 어렵게 진행했더라도 소비자는 관계자의 노고와 상관없이, 각인되냐, 그렇지 못하고 지나치냐를 단 1초에 판단하게 된다. 그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함의에 대해 설명할 기회는 없다. 그렇기에 각인되고 기억되고 익숙해지는 시간을 거쳐 그 이후에 관심을 가지고 브랜드에 대해 살펴볼 수 있도록 본질이 담긴 커뮤니케이션을 꾸준히 하는 것 역시 네임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


‘이름대로 산다’는 말이 있다. 향후 몇십 년, 몇백 년을 살아갈 브랜드의 이름을 붙여주는 일. 그 삶의 방향성까지도 제시하는 일.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조물주가 된 느낌이 들 지경이다. 어떤 사명감으로, 오늘도 나는 새로운 브랜드에 묻는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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