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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만의 방을 엿보는 시대

브랜드 기획자의 업의 일지 #7. 우리의 경쟁적 취향전시는 언제부터였을까

by JuneK
KHM_Hans_III._Jordaens_002_-_Interior_with_an_art_collection_and_art_lovers.jpg Kunst- und Raritätenkabinett (German)

Kunstkammer (Art and Rarity Cabinet painting by Hans III Jordaens)


르네상스가 무르익고, 대륙의 발견은 곧 진귀하고 새로운 물건들의 획득과 동의어였다. 획득된 물건들은 당연히 나만 알기는 아쉬운 일이었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내가 얼마나 좋은 것을 가졌는지 자랑해야만 하는 미션이 생겼다. 그들은 각자만의 Cabinet of Curiosities(신기한 물건들로 채워진 “호기심의 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자연 관련 역사, 지질학, 인류학, 고고학과 관련된 자료와 더불어 예술 작품들을 수집한 것이었다. 이 공간에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이 공간을 최대한 세밀하게 그려 남기기도 했다. 주로 권력자나 귀족들이 적극적이었으나 중산층과 초기 과학자들도 나름의 컬렉션을 가질 정도로 붐이 일었다. 이 방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 위함이기도 했고 단순 유희를 위해서도 쓰였다. 사유화되었던 이 취향의 방의 형태는 박물관이나 갤러리의 형태로 전문화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인스타그램 피드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Pinning 하면 일어나는 일

캐비닛 같은 진열장에 빈티지 꼬냑과 크리스탈 잔을 굳이 세워두는 방식이 아니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손쉽게 쿤스트캄머를 만들어낸다. 스포티파이가 청각적 수집이라면 핀터레스트는 이미지, 동영상, 링크 등의 시각적 수집의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화된 쿤스트캄머라 할 수 있는 핀터레스트는 단순 수집을 넘어 머신러닝 모델을 활용해 사용자의 활동 데이터를 학습하고 추천까지 하는 개인화 형태를 띤다. 구글의 검색과 뭐가 다르냐 묻는다면 핀터레스트는 75%의 사용자가 평균 60개의 검색결과를 확인한다. 보통 사람들이 이미지를 인식할 때의 속도가 텍스트 인식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반면, 구글의 경우 검색결과 페이지에서 1,2,3위 이하는 클릭 확률이 급격하게 낮아진다.) 나는 실제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심심하면 열어두고 몇 시간 동안 다양한 시각적 콘텐츠를 탐색하고 흘러 흘러가는 일을 좋아했다. 주로 패션 스타일링이나 네일아트를 받으러 갈 때 샵에서 제시하는 한국 트렌드를 따르고 싶지 않고 외국의 트렌드를 확인하거나 전혀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하고 싶을 때 영감을 얻기 위해 쓴다.


Pin은 정돈된 인스타그램

Pin은 보드라는 것으로 카테고라이징이 가능하다.(인스타그램의 컬렉션이 핀터레스트의 보드라고 볼 수 있고, 인스타는 그것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도록 허용한다.) 핀터레스트는 이 보드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유저의 필터링을 꼭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성된 보드는 팔로우의 대상이 된다. 보드를 생성한 사람이 아니라, 보드 그 자체를 팔로우하게 함으로써 모든 취향에 동의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두었다.


이쯤 되면 핀터레스트가 가장 정제된, 뛰어난 이미지를 피드에 띄우고, 우리가 머릿속에 있지만 그게 뭔지는 애매하게 간질간질할 때 핀터레스트를 찾아가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결국 사람의 필터링, 사고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는 것. 무한대로 유영하고 해당 서비스에서 가능한 오래 머물게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껏 타고 타고 유영을 할 때쯤엔 네일 디자인을 보러 들어갔는데, 네일을 한 그녀의 손에 끼워진 주얼리를 검색하고 있는 것. 어느새 핀터레스트는 불확실한 머릿 속 이미지를 확실한 욕구와 소비로 치환하는 가장 의뭉스러운 소비 조장 커머스의 역할을 하고 있다.


IMG_5282.PNG 나 역시 얼마 전 비중있는 소비의 발단은 이 Pin 한 장이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쿤스트캄머를 온라인 세상 곳곳에 흩뿌려두고 있는 세상을 산다. 조만간 우리는 이 어지러운 정보들을 한 번쯤 가지런히 정돈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거다. (비슷한 니즈로 나는 온라인 신문을 읽다가 내가 얼마큼 텍스트를 확인하고 점유했는지 물질적으로 인식하고 싶어 필사 혹은 오프라인으로 옮기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이 욕구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즐겨찾기, 보드, 컬렉션 등으로 충분할까? 누가 제일 잘할 수 있을까? 아이언맨의 자비스처럼 내 뇌와 동기화된 누군가가 나를 적재적소에 도와준다면 어떨까?


이 욕구는 단순 효율적으로 정보를 분류해내고 싶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인가?

우리는 이 효율을 통해 뭘 얻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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