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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N Mar 05. 2021

2021.03.05. 오전 9시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삶

전 회사 동기의 대학원 입학 소식을 들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삼수를 하고 졸업 후엔 회사를 다니다 그녀는 다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어떤 이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도 말하지만 적어도 내 삶의 방식에 빗대었을 때 그녀의 결정은 대단히 낯설다.


크게 실패해본 적 없는 나의 평탄한 인생의 내면은 결코 매끄럽진 않다. 둥그런 겉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해 내 마음의 작은 희망의 싹은 수백수만 번을 짓밟혔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많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훗날 여유가 될 때 할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충분한 소질이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스스로 타협하는 버릇을 들였다.


그리고 난 그 비겁한 내면에 대한 정당방위가 있었다. 해보고 싶은 일을 찾기보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쉽고 고로 현명했다. 내 또래들과 비슷한 시기에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그렇게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삶이 가장 평범하고도 무난할 것이다. 어쨌든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늘 나는 내면의 진실된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단 해볼 만한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며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걸어온 나의 인생도 나쁘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순간의 임무에는 늘 잘해보려 노력했고 그안의 보람과 행복도 있었다. 내가 걷는 길에서도 간혹 방향을 틀어볼법한 기회들이 있었고 그 순간만큼은 치열하게 고민해보기도 했다. 종종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어울릴 수 있는 뜻하지 않은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나의 가족과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나의 그런 안정감을 좋아했고, 내가 속한 사회 역시 나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신경 써야 할 존재임은 분명했다.


어떤 삶이 가장 행복한지, 그리고 가장 주변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외면한 길을 걸어간, 그리고 어느새 이미 많이 나아간 사람들을 보면 막연한 동경과 씁쓸함이 있다. 조금만 더 나에게 시간을 줄 걸,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질 걸 후회가 될 때도 있다. 긴 방황 끝에 또다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그녀의 용기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라면 선뜻 하지 못할, 진짜의 나를 찾아 나서는 그녀가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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