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 해먹어요.
8월의 어느 날,
어제도 열대야에 한참을 뒤척이다 잠에 들었다.
늦잠을 실컷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자, 습한 공기와 매미 소리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에어컨을 예약을 해두고 좀 돌다가 꺼지게 하고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눅눅하다.
더위가 먹은 건지, 냉방병에 걸린 건지 알 수 없는 요즘.
냉장고에 시원하게 해 둔 보리차를 컵에 따라 단숨에 들이켠다.
일어나자마자 찬물 마시는 거 안 좋다고 하던데...... 이 날씨엔 별 수가 없다.
남자친구가 지인 결혼식이 있어 오래간만에 집에서 혼자 쉬는 날.
오늘 진짜, 제대로 혼자를 즐겨야지.
더운 열기가 금세 방안을 가득 채운다.
에어컨 리모컨을 쥐고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선풍기를 켰다.
오늘은 돈도, 기력도, 에너지도 절약하는 날이니까.
까는 이불, 덮는 이불, 베개 커버 다 벗겨내서 세탁기에 넣고 돌려준다.
거의 정오가 다 되어 일어나서 그런지 벌써 배가 고프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로 마음먹은 날이어서 그런가, 더워서 그런가, 대낮부터 맥주가 땡기네.
냉장고를 열어 있는 재료들의 유통기한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얼마 전 사두었던 훈제오리 한팩.
오호, 고추장오리볶음밥을 해 먹을까?
매콤한 볶음밥에 시원한 캔맥이라, 벌써 군침이 싹 돈다.
입맛 없을 때 딱인 매콤 달콤 고소한, <고추장 오리볶음밥>
팬에 기름을 두르고 쌘 불에 달궈준다.
그 위로 훈제오리 한팩을 투하.
팬에 오리가 닿자마자 “치익—” 소리가 여름의 열기와 맞닿는다.
주방에 불을 켜자마자 송골송골 나기 시작하는 땀.
안 되겠다 싶어 창문을 후다닥 닫고 에어컨을 켜버리고 말았다.
오리기름이 싹 나오면서 튀겨지듯 구워지는 훈제오리.
구음색이 잘 나기 시작하면 가위로 오리고기를 아주 잘게 조각내어준다.
프라이팬에 바로 가위질이라니, 엄마가 봤으면 바로 등짝 맞을 일이다. 바닥에 스크래치 나지 않도록 신경써주기!
송송 얇게 썰어놓은 파를 그 기름에 같이 볶아 파향을 내준다.
좀 볶아졌다 싶으면, 팬을 기울여 기름을 한 곳으로 모아주고 키친타월을 두껍게 말아 기름을 한 번 덜어내 준다. 오리기름은 나쁜 기름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너무 많으면 축축한 볶음밥이 되어버려 별로다. 수저로 세네 스푼 정도의 기름만 남겨주기.
기름을 좀 빼줬으면 그 위로 맛술 크게 한 숟가락 둘러주고 다시 볶아주다가 고추장 크게 한 스푼도 투하.
오리기름과 고추장이 섞이면서 걸쭉하면서 칼칼한 비주얼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 위로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준 햇반 하나를 투하.
밥알 하나하나에 오리기름이 잘 코팅되도록 수분기를 날리며 잘 볶아준다.
고추장이 숙성이 되어서 그런가 처음 샀을 때보다 더 매워져 매운 냄새가 은근히 난다.
다 볶아졌으면 그릇에 잘 옮겨주고 그 위에 반숙달걀프라이 올려주고 또 그 위에 깨 솔솔 뿌려주면.
여름과 잘 어울리는 비주얼의 고추장오리볶음밥 완성.
사진을 한 장 찍어 남자친구에게 공유해 주고.
이제 빨리 먹어야지.
서둘러 티브이를 켜주고, 상을 세팅하고, 냉장에서 냉동으로 잠깐 옮겨둔 캔맥을 따서 한 모금 쫙.
캬- 이거지.
계란노른자를 숟가락으로 탁 터트려 고추장오리볶음밥을 한입.
고소하고 달달하고 매콤한 게 한입씩 더해질 때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그럴 때마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으로 또 싹 식혀주고.
별 것 아닌데, 아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기분.
이런 게, 어쩌면 여름을 견디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보내기로 결심한 하루.
먹은 것 다 치우고, 샤워 싹 해주고, 나와서 이불 빨래 돌아가는 소리 들으면서 시원하게 누워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