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또다시 기대해도 좋을 드립커피와 브라우니

혼자서도 잘 해먹어요.

by 수현

12월의 마지막 날,


연말이 되면 늘 그렇듯, 지나온 한 해의 무게가 천천히 어깨에 내려앉는다.

해야 했던 일들은 제대로 해냈는지,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면 아쉬운 일도 많았고, 미숙했던 순간들도 있었고, 애써 모른 척 지나온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커피를 내리기 위해 주전자 물을 끓이자 작고 둥근 긍정의 방울들이 금세 끓어올랐다.

새로 취미 들이기 시작한 드립커피가 천천히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금방 찬찬히 한 해를 돌이켜보고 생각을 정리하니,

아, 역시 지나간 건 그대로 놓아두어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역시 무거운 마음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잘 어울려.

연말의 이 순간과 잘 어울리는, 커피와 함께 먹을 디저트로 브라우니를 만들어야겠다.


커피랑도 우유랑도 잘 어울리는, 연말의 설렘을 담을 녹진한 다크초코브라우니


무염버터 104g와 발로나 다크초콜릿 130g을 전자레인지에 30초씩 두 번 정도 돌려주면서 녹여준다.

1분을 한 번에 돌려주는 것도 30초씩 나누어 돌려주며 중간에 한 번씩 체크하고 섞어주는 게 좋다.

혹시라도 오버쿡 되는 걸 막기 위해서.

주걱으로 잘 섞어주는데 코 밑으로 벌써 올라오는 버터와 초콜릿의 풍미.

이대로 그냥 찍어 먹어도 맛있겠다 싶다.


다른 그릇에 실온에 꺼내둔 달걀 3개를 풀고 백설탕 59g, 황설탕 42g, 소금 1g을 넣고 잘 녹도록 섞어준다.

베이킹을 하다 보면, 버터와 설탕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간다고 경악스러운 때들이 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당충전이 얼마나 행복한 지 아니까 눈 감아준다.


결정 없이 잘 섞였으면 거기에 아까 녹여 섞어둔 버터와 초콜릿을 부어 또 잘 섞어준다.

체에 밭쳐 중력분 36g과 코코아파우더 16g을 넣어서 가루가 뭉치지 않도록 또 또 잘 섞어준다.

역시 베이킹은 팔이 아프다.

그렇게 반죽 완성.


정사각형 2호 사이즈의 코팅팬 틀에 유산지를 깔고 반죽을 붓는다.

반죽 그릇을 높게 들어 올려 부어주고 표면을 정리해 준 다음 바닥에 여러 번 내리쳐 기포를 제거해 준다.

그래야 중간에 구멍 없이 밀도 있는 브라우니가 완성된다.


예열된 오븐에서 170도로 23분 굽는다.

베이킹은 이 짧지 않은 굽는 시간이 참 설렌다. 그래서 한 번씩 하고 싶어지나 싶다.

띵- 하고 오븐이 끝난 소리가 들린다.

잘 구워진 브라우니는 꺼내어 좀 식혀준다. 뜨거운 상태에서 만졌다가는 모양이 으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김이 날아가 조금 단단해졌다 싶을 때 칼로 9등분 해주면, 딱 한 번 먹을 만큼의 브라우니 사이즈가 된다.


당장 하나 따땃할 때 먹어줘야지. 뭐든 갓 구워 나오자마자 먹어줬을 때의 맛이 또 있다.

나머지 친구들은 유산지로 잘 싸서 냉장 보관 해준다.

하루 숙성해서 먹으면 더 쫀득한 식감이 된다.


이게 뭐라고 하고 나니 뿌듯하다.



새해가 밝았다.

어제 카운트 다운을 외치는 순간 전까지 괜스레 설레는 마음이 들었는데, 오히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밤 12시가 조금 넘으니

다른 날과 별 다르지 않은 평범한 1월 1일의 시작이구나 하는 감정이 왔다.

어른이 된다는 건, 특별하게 느껴지던 것들을 이제 무디게 보내게 되는 것인가 싶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낳으면 또 새롭게 느껴진다고들 하나? 그 어린 시절만의 특별함을 옆에서 함께 느끼게 되니까.


새해부터 늦잠을 자고 있는 남자친구를 깨우고,

어제 만들어서 냉장고에서 숙성시킨 브라우니를 실온에 꺼내두고 함께 마실 커피를 내려본다.

커피를 다 내리고 브라우니를 전자레인지에 20초만 돌려줬다.

갓 데운 브라우니를 포크로 반으로 가르자, 따듯한 초콜릿 향이 올라온다.

진한 단맛 한 입에 커피 한 모금.


한 해를 무사히 보낸 나에게 주는 작은 보상과 같은 그 따스한 온도를 먹는 듯한 기분이 든다.

또 한 해를 열심히 살아내야 할 나에게 주는 응원과도 같은 맛이랄까.


나이가 한 살씩 더 먹어갈수록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은 늘 이런 식으로 찾아온다.

과하게 다짐하거나, 화려하게 포장된 희망 말고, 그저 ‘조금 더 괜찮아지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로.

조금 더 건강하고,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발전하고, 조금 더 평안해지길.

그저 지금처럼 무탈하게, 어떠한 불행이나 어려움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다 받아들이고 또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길.

이번엔, 조금 더 내 편이 되어보기로 그렇게 마음을 먹어본다.


브라우니 한 입, 그리고 커피 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마시며 남자친구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보내는 소소한 새해의 아침.

이따가는 떡국을 해서 먹기로 하고, 어떤 고명을 올리면 좋을까 고민하는 이 시간.


올해도 역시, 기대해도 좋겠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