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 해먹어요.
12월의 어느 날.
내 어린 시절 기억 속 엄마의 겨울은 언제나 김장으로 시작됐다.
그런 날이면 아침부터 베란다 쪽에서 알싸한 매운 냄새가 올라왔다.
마늘, 생강, 고춧가루, 그리고 배추 숨이 죽는 소리.
거실에 넓게 비닐을 깔아놓고 배추 속을 채워넣던 그 시절의 허리 뻐근함이, 그 시절의 다정함이.
선명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에도 엄마는 늘 그랬듯 김장을 하셨다.
나와 동생이 독립하고 멀리 떨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그 양은 많이 줄었지만.
나이가 들어갈 수록, 매 번 꾸준히 무언가를 해낸다는 게 얼마나 큰 정성과 노력과 그리고 의지가 들어가는 일인지를 깨달아간다.
특히나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닌 일에서는 더욱이.
그런 엄마의 정성이 집 앞에 도착했다.
스피커 폰으로 엄마와 통화를 하며 택배에 잘 싸여 온 김치를 정리했다.
김치통에 김치를 넣으며 작은 배추 한 장을 입에 탁 넣었다.
도저히 입에 넣지 않을 수 없는 색깔과 냄새.
밖이 추워서 그런가 아직 덜 익은 김치가 시원한게 입 안에 퍼진다.
한 입 먹자마자 어떠한 충동이 막 올라왔는데,
김치가 익기 전에 꼭 해먹어야 하는 게 무언인지 다들 알 것이다.
바로 수육.
보통은 그냥 맹물에 양파, 파, 마늘, 된장 풀고, 월계수잎 띄워서 팔팔 끓여주다가 끓는 물에 수육용 돼지고기를 넣어 한시간 정도 푹 삶아 주는 레시피를 가장 선호한다.
삶은 고기는 담백하게 먹으려고 하는 레시피니까.
그런데 오늘은 조금은 느끼한 게 땡기는데...
아무래도 남자친구를 불러 버터수육을 해먹어야겠다.
마지막 한 점도 양보하기 어려운 맛의, <엄마표 김장김치와 버터수육>
쿠킹호일을 길게 찢어서 수육용 돼지고기를 가운데에 잘 자리 잡아준다.
이때 수육용 고기는 속까지 잘 익으라고 칼집을 크게크게 내어준다.
칼집을 낸 사이사이에 길쭉하게 썰어낸 대파와 통마늘을 얹어준다.
버터를 듬뿍 퍼서 수육 고기 위에 잘 발라주고,
호일을 잘 돌돌 말아 새는 곳이 없도록 완전히 감싸준다.
중불로 불을 올려주고, 프라이팬에 호일 째 통째로 올리고 뚜껑으로 누르 듯 덮어주면 끝.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이제 기다림의 시간.
50분 정도 조리해주는데, 15분에 한 번 씩 호일을 뒤집어준다.
50분 충분히 조리해줬으면 호일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열기에 뜨거우니 조심!
버터의 향이 먼저 주방에 퍼진다.
버터의 풍미를 가득 품은 잘 쪄진 통마늘과 통대파는 먼저 그릇에 덜어내준다.
강불로 달군 프라이팬에 잘 삶아진 고기를 올려 겉면을 한 번 더 노릇하게 구워준다.
버터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너무 타지 않게 잘 해줘야 한다.
잘 익은 고기를 도마에 올려주고 살짝 열기가 날라가는 동안 주변에 튄 기름들을 잘 닦아준다.
깨끗한 주방이 요리의 기본이니까.
이상하게 더러워진 주방에서는 요리가 하기 싫어진다.
도마 위에서 살짝 김이 날라간 고기를 잘 썰어서 쪄진 파와 통마늘이 있는 그릇에 함께 잘 팅해주면 진짜 진짜 끝!
엄마표 김장 김치 한 포기 꺼내 잘 썰고 버터수육과 같이 사진 찍어 엄마에게 보내본다.
'고마워. 잘 먹을게.'
때마침 센스있게 막걸리까지 사서 온 남자친구와 함께 간만에 파티처럼 즐긴 저녁.
올 해도 이렇게 금방 지나가는구나 싶어 조금은 아쉬웠던 마음이 문득 기대감으로 바뀌는 찰나의 순간.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시즌도,
모두가 희망을 마음에 품고 새로운 소망을 품는 연말 연초에도,
내년에는 또 얼마나 재미있는 일들이, 맛이 있는 요리들이, 행복한 순간들이 있을까.
누군가를, 나 스스로를, 어떤 형태이든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음식들이 올 해도 나를 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