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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Dec 25. 2021

2021년을 마무리하며

이전에는 몰랐던 세상에 눈을 뜨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을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



01.

스물네살과 스물다섯살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고민스럽다.

여전히 내 나이에 맞는 일상과 나에게 맞는 일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 없는 문제를 계속 마주했다 미루고 다시 마주했다 미루는 중이다.


인생을 바꾸려면 세가지를 바꾸면 된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 내가 함께하는 사람, 그리고 내가 시간을 쓰는 방법.

어쩌면 나는 올 해 이 세가지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높은 건물들과 네온사인이 가득한 서울이 아닌 어디에 눈을 두어도 바다와 오름이 보이는 제주에서 살게 되었다는 점이고,

부모님과 다시 같이 살게 되었으며, 제주에서의 새로운 인간관계가 무엇보다도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점이고,

서울에 비하면 아주 여유롭게 흘러가는 듯한 제주의 시간 속에서 몇 분, 몇 시간 단위로의 계획이 아닌 그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으로 시간 쓰는 방법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올 해 이 곳에서 나는 나의 하나의 세계를 깨뜨렸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크게 성장했음을 느낀다. 단어뿐만인 성장이 아닌 정말 ‘성장’이라는 단어를 체감중이다.

성장 : 형태의 변화가 따르지 않는 증량.

인생을 살아내는 내 마음의 품이 스물다섯을 보내는 동안 더 넉넉해졌다.

아마 그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내 주변의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이에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일적인 기술, 살아가는데 필요한 벌이, 가지고 있는 귀중품과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몸집 부풀리기가 아니라 내적으로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공간이 아주 풍성해진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기분이 좋다.

내가 살아야하는 곳이 굳이 서울이 아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 내가 지금 당장 회사에 취직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2021년을 보내며 끊임없이 했던 이 생각들은 오히려 나에게 더 큰 꿈을, 더 먼 미래를 그리게 만들었다.


02.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내가 좋아하지 않는 무한 굴레 속에 지내다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기적을 만났다.

게다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해주다니, 내 마음 속에 사랑의 눈금이 있다면 찰랑거리다 못해 흘러 넘칠 듯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전혀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생각치도 못한 순간에, 생각치도 못한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지만

이 사람과 만나서 알게된 것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시작된 연애가 행운과도 같게 느껴진다.


손 잡아주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폭- 하고 안기는 것이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유치하다고만 생각했던 달콤한 속삭임이 이렇게나 큰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내가 눈물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또 속 좁은 어린 아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만큼이나 거침없어지고 무모해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그 처음의 이유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 퍽 기쁘고 즐거운 요즘이다.


앞으로 끝없이 부딪히게 될 두 세상이지만 그것마저도 기대하게 만들어준 사람이 내 연인이라는 것이 감사하다.

어쩌면 올 해에 그 사람을 만나고, 연애를 시작하게 된 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묘한 생각이 든다.

함께 하는 앞으로의 순간들이 서로에게 큰 행복이, 그리고 행복하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은 이 인생에서 의지할 곳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03.

나는 이제 곧 스물여섯이 된다.

이십대의 중반을 이렇게 넘어서게 되다니. 새삼 시간 참 빠르구나 싶으면서, 다시 또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된 거 같아 설레는 마음이 들기도 하다.


모든 나이에는 적응기라는 게 있는듯하다.

스무살에는 내가 스무살이 된 줄도 몰랐고,

스물한살에는 이제 스무살이 된건가 어리둥절 했고,

스물두살 즈음이 되어서야 그래 이제 스무살이구나 싶었다.

스물세살이 되어서야 이십대 초반을 이렇게 끝낼 수 없다며 발악을 좀 하다가,

스물네살엔 그렇게 지나가버린 이십대 초반의 무게를 체감했다.

스물다섯살이 되어서야 드디어 스무살에 적응을 한 듯하다.


스물여섯을 앞둔 시점에 드는 생각은,

좋은 경험들은 쌓이고 쌓여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의 순간 그 방향을 결정하게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다.


요즘 내가 가장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이전의 경험들에 대한 기억이다. 특히나 스무살  이전의 어린날의 기억들이 많이 그렇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꿈은 화기이기도, 시골 학교 선생님이기도, 디자이너이기도, 작가이기도 했지만 그 어떤 것보다 궁극적으로했던 꿈꾸어 왔던 것은.

내가 가족 속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내가 꾸린 가족과 또 다시 느끼는 것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 보냈던 가족과의 시간들 속에서 자연과 자주 함께 했던 기억이, 별 것 아니지만 함께 깔깔 웃어댔던 그 소소한 기억들이,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마음 잘 맞는 친구들과 함께 무엇을 할 때 즐거웠는지, 어떤 순간에 행복감을 느꼈는지에 대한 기억들이 지금의 내가 미래를 꾸려가기 위해 해야하는 선택들에 아주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가끔 삶을 살아가다보면 한 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듯한 느낌을 주는 충만하게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

즐겁고 신나고 짜릿했던 순간은 물론 아주 많지만, 그런 순간들은 열 손가락 안에 들정도로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그 순간은 머리가 아닌 마음에 새겨지기 마련이다.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그 순간들에 집중하며 앞으로의 선택들을 해나가기로 나는 마음 먹었다.


이전의 나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이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와도 같은 시간들이 먼 훗날 좋은 기억들로 남아 좋은 선택의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주기를.

아디오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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