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현 Feb 09. 2022

( 제주도 )에 대한 기록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곳

학창 시절, 제주도는 나에게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는 먼 관광지, 바다색이 에메랄드색깔인 곳, 예능에 많이 나오는 여행지. 딱 그런 곳이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지로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뙤양볕 아래 올레길을 한참을 걸어 생고생을 잔-뜩 한 기억 밖에 남지 않았고, 독특한 박물관들이 많아 이상한 사진을 많이 남겼던 곳, 그리고 언젠가 성인이 된다면 혼자 여행해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년 후, 나는 제주도민으로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그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제주도민으로의 삶은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데려가고 있다.

함덕해수욕장의 붉은 노을

25년을 서울에서만 살던 내가 스물다섯을 분기점으로 제주도에서 살게 된 그 이유의 시작점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면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때는 바야흐로 2017년, 21살이 된 해에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제주도에 내려가 살고자 하니 학교 근처에 원룸을 얻어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이전부터 꾸준히 이야기를 나누던 일이긴 하지만 정말 갑작스러웠다. 아빠가 하시던 사업 분야에서 앞으로 꾸준히 돈을 벌 수 없겠다는 판단과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겠다는 결심을 하시게 된 부모님은 그렇게 제주도로 내려가 자영업을 시작하셨다.

부모님이 제주로 거처를 옮기는 일은 아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나는 어쩌다 보니 학기에는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생활하고, 방학이 되거나 긴 연휴가 되면 부모님댁이 있는 제주에 내려가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에는 제주도에 부모님이 사시는 게 참 좋기도, 나쁘기도 했는데.

매 번 제주와 서울을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고, 부모님 없이 사는 자취생활이 은근히 외롭기도 했고, 또 부모님이 여러모로 힘들어 하시던 때에 전화로 힘든 일들을 이야기 하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K-장녀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또한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하지만 매 방학 때마다 제주도라니… 마음이 조금 힘들어질 때면 제주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훌쩍 떠나면 된다니… 제주집에 가면 바다가 그리고 오름이 눈 앞에 있다니… 참 행복한 일이기도 했다.

제주는 참 아름다운 섬이었고, 자연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나와 맞는 주파수의 방식대로 충-분히 힐링할 수 있었다. 부모님 일을 돕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고 산이고 꽃이고 한껏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과 조금은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시간, 그리고 늘 마법같던 노을까지. 매 번 제주에 올때마다 제주에 대한 마음을 그렇게 조금씩 키워갔는지도 모르겠다.

제주도를 부모님이 사는 곳으로 다니던 2, 3년 동안 나는 제주에 늘 여행자의 마음으로 머물렀다. 그렇다고 아주 많은 곳을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 댁이 있던 제주도 동쪽은 동쪽 바다를 따라 있던 버스 노선을 따라 참 많이 이곳 저곳 다니고, 마음에 드는 곳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다녔으니 말이다.


이때의 나는 제주도에서는 절-대 못살겠다는 생각이었다. 제주도에서 사는 건 어떨 거 같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나는 제주도에서는 절대 절대 절대 살지 않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제주도에는 일자리가 없고, 문화 생활이 없고, 택배비는 다른 지역에 비해 3000원에서 최대 5000원까지 비싸고, 친구들을 만나려면 비행기를 타고 나가야한다니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고, 배달음식이 안되는 곳이 너무 많고, 버스 배차간격은 기본이 20분 30분이고, 저녁 10시면 온 사방이 깜깜해지는데다가 버스도 일찍 끊겨 늦은 시간까지 어디에 머무르는 일은 숙소를 따로 잡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차로 나가야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불러낼 친구 하나 없는 곳이 제주도였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졸업하면 알바 자리라도 구해서 원룸 살이를 하다가 취업하면 서울에 원룸이라도 전셋집을 얻어 지낼 것을 계획하고, 내심 부모님이 다시 서울로 올라오시기를 바랐다. 제주도는 여행하기에 너무 좋은 곳. 가끔 일상에서 탈출해 힐링을 하기 위해 가기 좋은 곳. 딱 거기까지였다.


시간이 흘러, 2021년, 스물 다섯, 나는 졸업을 하고 제주도로 내려와 제주도민이 되었다. 역시 사람은 함부로 장담하면 안된다.

제주도 집에서 보이는 바다

스물 다섯, 서울 학교 근처의 원룸 집의 짐들을 모두 가지고 제주로 내려왔다.

졸업과 동시에 제주에 내려온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의 이유였다.


가장 큰 이유는 아빠의 권유였다. 글 쓰는 일에 대해 지지를 해주시던 아빠는 졸업을 하고 바로 취업을 하기보다는 여태 달려왔고, 서울 코로나 상황도 너무 좋지 않으니 잠시 쉼의 시간을 가지면서 글에 집중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는데, 하고 싶은 일을 나중으로 미루면 현실적으로 정말 할 수 있는 상황은 앞으로 점점 사라지게 될 거라는 아빠의 말씀이 마음이 와닿았다.

무엇보다 막학기에 내가 정해뒀던 취업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고, 그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길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한 달에 들어가는 생활 비용만 월세에 관리비에 식비 등등 고정으로 100만원이 필요하니… 이 상태로 취업을 했다가는 정말 이도저도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나는 생각을 좀 정리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정립이 필요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제주에 내려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스물다섯 2월, 나는 졸업과 동시에 제주에 내려왔고 한달 간은 정말 쉼의 시간을 가졌다.


제주에 있는다고, 그리고 취업을 잠시 미루게 되었다고 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맘 놓고 글만 쓰기에 나는 그럴 배짱이 없었던 거다.

하루에 두세시간씩 취업연계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모집 공고들을 확인했고, 만능자소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제주에 대형 카페 알바를 지원했다. 그렇게 3월부터는 알바를 시작했고, 입사 지원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 쓰겠다고 제주까지 내려왔는데 뭘 그렇게 바쁘게 살았나 싶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선택한 운명이려나…


내가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오롯하게 스스로 결정하고 싶던 시기.

그리고 그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순간들은 그 즈음부터 시작되었다.

나에게 나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알아갈 시간들이 충분히 주어졌고, 내가 알바를 하던 카페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사람들이나, 제주살이를 하던 사람들과 만날 기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가 졸업을 하고 제주 우리 집으로 한달 살이를 하러 왔다. 그들과 대화 하고, 또 제주를 즐기고,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나 자신에게 던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제주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이상으로 살만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문화 생활을 대신 할 만한 곳들이 제주는 널리고 깔린 곳이었고, 돗자리나 캠핑 의자 하나면 어디든 앉아서 자연으로부터 치유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내가 살고 싶은 템포에 맞추어 삶을 살 수 있는 곳이었고, 내 옆집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연봉은 얼마인지, 차는 어떤 것을 몰고, 얼마만큼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는지는 하나도 궁금해 하지 않는 곳이었고, 자신의 삶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는 곳이었다. 서울은 이미 지난 3년, 4년 동안 밥 먹듯 다녔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었고, 친구들은 내가 제주에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이 연락하고 찾아왔다. 이곳 저곳을 다닐 친구들이 제주에도 생겼고, 무엇보다 모든 순간을 나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남자친구가 생겼고, 부모님이 제주에 완전히 자리 잡고 싶다는 결정을 내리셨다. 길다면 길고, 아주 짧다면 짧을 반년이라는 시간동안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도 기울어지기 시작한 거다.


그 모든 요소들이 내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걸 안다. 아니 아주 큰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내가 제주에 머무른다면, 그건 부모님 때문이 아니라, 남자친구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의 말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유에서든, 도망치고 싶은 이유에서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겠노라하는 나의 욕심에서든 나의 선택과 나의 마음 때문이라고. 나의 결정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제주도… 생각보다 나 이곳에 살고 싶은데??

나는 꽤나 오랜시간동안 서울에 살면서 서울에서 살아갈 생각만 했다.

초중고를 졸업하면 당연히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면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하고, 독립을 해서 직업인으로 자리를 잡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결혼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졸업 후 내 세상은 서울이 아닌 제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가 예상하고 그렸던 미래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내가 제주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누구와 살아가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제주라는 곳이 내가 꿈꾸고 그리는 미래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음은 분명하다. 작지만 넓은, 조용하지만 다채로운, 여유로워보이지만 어디보다도 치열한, 그리고 유독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섬. 제주도.

이곳에서의 2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나 그때도 제주도에서 여전히 살고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 버킷리스트 )에 대한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