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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Feb 12. 2022

나는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어.

일종의 열등감에 대하여

텔레비전을 돌리다보면, 인터넷을 보다보면, 세상에 왜이렇게 잘나고 잘하는 사람이 많은지.

노래 잘하는 사람, 춤 잘 추는 사람, 예쁘고 잘생긴 사람, 글 잘 쓰는 사람, 운동 잘하는 사람, 언어 잘하는 사람, 그림 잘 그리는 사람, 아이디어 상품으로 대박난 사람, 똑똑한 사람, 돈 많은 사람…  어느 한 날은 전혀 나답지 않게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그런 날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다보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시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실패를 하더라도 일단 자신이 가진 크기만큼의 재능을 사람들 앞에 내보이고, 그리고 꾸준하게 해나가야 조금의 성공이라도 거둬들일 수 있는 걸 말이다.


그걸 아는데, 그걸 알지만, 내가 무언가 하는 건 왜이렇게 힘들고 어려운지… 나에겐 그들에게만 있는 근육이 없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학창 시절, 나는 은연 중에 내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  거라고 생각했다. 사회의 챗바퀴 속에서 일하더라도 자신만의 두각을 드러내고 재능을 표출하고 어떠한 결실을 맺어내는 창의적이고 모범이 되고 대범하고 빛이 나는 그런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과 같은 대단한 사람 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공부를 꽤 잘했다.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이유에서거나, 좋은 성적을 받아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욕심에서거나 나는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다. 중학생 때는 실기미술 공부를 하느라 하루에 12시간을 그림을 그리면서도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공부하며 반 5등 안의 성적을 유지했고, 공부에만 집중했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문과 1,2등을 놓치지 않았다. 울면서 공부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했나 싶기도 한데,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나름 좋은 명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림도 잘그렸다. 미술선생님들로부터 색감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미술대회에서 상도 꽤나 탔다. 예고를 준비했었고, 여전히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다. 음악도 잘했다. 악보를 못 봤지만 절대 음감으로 피아노를 쳤고, 이것 저것 악기를 잡으면 금방 익혔다. 노래도 어느정도 나쁘지 않게 불렀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에 가삿말 붙이는 걸 잘했고, 노래도 만들었다. 체육도 잘했다. 달리기는 잘 못했지만 배드민턴, 탁구, 농구, 피구 등등 연습을 하면 실력이 느는 종목들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받았다. 글도 잘 썼다. 초등학생때부터 글 쓰기 대회에서 항상 상을 휩쓸고, 중고등학생 때에도 글과 관련된 활동들을 하면 항상 두각을 냈다. 영어학원에서는 언어에 재능이 있는 거 같다며 이쪽으로 공부시켜서 통번역가를 시켜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스스로 대단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꽤나 훌륭한 편이다. 그리고 아직 내재되어있는 것들이 터지지 못한  일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 터트릴만한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어린 날에 상상했던 아주 대단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찍이 떨어져 있는  팩트이다.


나는 건강한 부모님이 있고, 내가 일할 곳이 있고, 충분히 건강하고, 무엇이든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다. 나와 결혼을 꿈꾸는 건실하고 착한 남자친구가 있고, 언제나 편을 들어주는 진짜 친구들이 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그려나가고 있고, 나는 그 삶을 준비하고 있고, 그걸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정도만 해도  기준 아주 훌륭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어린 시절 내가 그렸던 그 대단한 나를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에 가끔은, 아주 조금은, 허무함이 밀려온다.


어쩌면 나는 어린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의 미래와 천천히 작별인사를 해왔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그런 삶을 나는 그리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결국 지금의 내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정말 원하지 않는 게 맞아?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에 망설임과 두려움이 있는 게 아니고? 라고 묻는다면,

아니. 라고 당당하게 말은 못하겠다.


그래서 나에게는 지금 움직이고, 도전하고, 시도하고, 그럴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려고 하는 에너지,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에너지,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에너지.

지금은 이 허무함이 그리고 가끔씩 꿈틀거리는 나의 욕망이 부스터를 얻게 될 그 에너지를 잘 모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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