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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Feb 13. 2022

( 종달리에서 나눈 친구와의 대화 )에 대한 기록

우물 안 개구리가 뭐 어때

한창 제주에서 더 머무를지, 서울로 올라갈지를 고민하던 때.

서울에서 가족처럼 지낸 나의 절친이 제주 우리집에서 한달 살이를 했다.

그 친구는 나와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내가 좋았던 곳에 데려가면 무조건 성공이었다. 종달리가 그런 곳이었다.


사람이 드물고, 바다와 산이 함께 보이고, 산책을 마음껏 즐길 수 있고, 곳곳에 특색있는 공간들이 있는 조용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동네 종달리.

우리는 그날 종달리를 한참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대화는 이미 서로 통한 수백가지의 공통점들 말고 또 다른 우리 둘만의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것인데, 그게 바로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 친구와 나는 둘 다 남동생을 둔 장녀이다. 그리고 비슷한 성향의 부모님을 두고 있다. 그래서 유독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무언가가 있다. 그 날도 제주도에 사는 것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 둘이 서로의 아빠에게 똑같은 말을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둘 다 흥분한 포인트는 그 말을 듣고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아빠는 말씀하셨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살아라.

정말 좋은 말이고,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세상은 정말 넓다. 영어를 잘하면 내가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의 넓이는 우리가 기존에 살고 있는 세상과는 차원이 다를만큼 넓어진다.

작은 한 지역이 아니라 그리고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언가 기획하고 만들어내고 성공한다면 내가 얻어낼 수 있는 것의 크기 또한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클 것이다.

하나의 경험보다는 두개의 경험을, 다섯개의 경험을, 열개의 경험을, 백개, 천개. 세상을 넓게 살며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많은 기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말씀이셨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그리고 일상을 살다가 종종 드는 생각은 나는 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가끔 세상이 넓다는 것을 잊고 사는구나라는 생각이다. 때문에 아빠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또 맞는 말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공감하고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든 또 하나의 생각은

우물 안 개구리가 뭐가 어때서?

둘 다 이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성장과 발전이 있으려면 우물 밖에 나가려고 해야하는데, 우물 밖에 나가야 더 큰 세상에서 살 수 있을텐데,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 우물 안에서 행복한 개구리가 되려고 하는 게 어쩌면 요즘을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마인드이지 않을까?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의 결말이지 않을까?

사실 둘 다 현생에 지쳐있을 때라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 둘 다 우물 밖에 나가고 싶어하는 개구리보다는 우물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개구리가 더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에서 통했다.

둘이서 같은 이야기를 듣고 같은 생각을 했다니 하여튼,, 을 외치며 한바탕 웃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반항적이라고 들릴 수도 있고, 너무 현실에 안주하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도전이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으려 한다며 한심하게 볼 수도 있고, 큰 꿈이 없는 청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물 밖에 나간 개구리들이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세상에 이름을 떨칠 수 있겠지.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겠지. 물론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가져야 할 마인드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물 밖에 나가는 게 아니라 우물 안에서 나름 행복을 찾으려는 우물 안 행복한 개구리를 꿈꾸는 우리를 과연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우물 밖에 나갈  있는 점프 실력을 갖춘, 하지만 우물 안이  행복해서 우물 밖에 나가려고 마음 쫓기지 않는 개구리가 되어보자.


개구리마다 다른 성향을 가졌지 않을까 싶다.

우물 밖에 나가야만 하는 개구리가 있는가 하면, 우물 밖에 나갈 생각도 안하는 개구리도 있고, 우물 안이 더 좋은 개구리도 있겠지.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떤 개구리인지 잘 아는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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