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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r 08. 2023

스물일곱, 서울에 있지 않는다는 것.

from. 서울촌년

스물일곱, 나는 서울이 아닌 제주에서 살고 있다.


서울에서 살고 있지 않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수냐고 물어볼 수 있다.

서울에서 살지 않고 있는 스물일곱이 아마 서울에서 살고 있는 스물일곱보다 많을 테니까.

하지만 25년을 살며 초, 중, 고, 대를 다닌 서울 촌년이 서울을 탈출해 제주에서 머무르기로 선택하기까지는 생각보다 큰 고뇌와 결심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스물다섯, 스물여섯의 시간 동안 99%까지 마음의 결정을 끌어올린 지금도 나의 마음 한구석엔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는 1%의 망설임이 존재한다. 그만큼 스물일곱의 나이에 서울에 있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대수인 것이다. 이미 결정을 내렸음에도 계속해서 나에게 괜찮겠냐고 반문하고 또 반문하는 것은 그만큼 서울이라는 곳이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터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서울은 무엇일까?

사람은 많고, 없으면 허전한 백색 소음들과 밤을 밝히는 네온사인들.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타성에 젖는 일입입니다. 사람과 부딪히고 부대껴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 이런 것들이 타성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희미해져 가는 나의 불빛을 느낄 때면 한없이 외로워지는 것. 그래서 고요한 적막을 동경하면서도 소음과 네온사인 속으로 뛰어들어 가는 것.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고, 또 지나쳤을까? 그냥 그렇게 모든 것들을 지나쳐 오늘도 하루도 지나갑니다.      

내가 대학생 때, 서울의 삶에 대해 쓴 문장이다.


저 글 속의 서울은 잿빛 도시로 그려졌지만, 나에게 서울은 회색도시만은 아니었다.

서울은 나의 모든 색을 터트려 온 삶의 터전이었다. 나의 모든 처음의 순간들이 난무하는 곳.

경기도에서 태어났지만 유치원 때부터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서울은 나의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 그리고 백수건달 대학시절까지 나의 온갖 성장스토리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나의 인간관계 속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고, 나의 대부분의 경험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히 서울에서 회사를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고,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가다 죽게 될 곳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변함이 없는 곳. 그래서 너무도 익숙한 곳, 머무른 지 한 시간이 채 안되어도 금방 적응하고야 마는 곳.

나에게 서울은 그런 곳이다.


서울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기로 선택하는 곳이다. 제주 인구밀도가 km² 당 약 364명이면 서울은 15650명이니 제주의 42배의 달하는 인구가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면적이 605.24k㎡, 제주의 면적이 1,850.28 k㎡이니 면적으로는 제주가 3배 더 넓은데 말이다.

서울은 사람이 많으니 다양성이 많다. 일자리가 많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장소와 편의시설, 그리고 의료시설이 많다. 교통이 편리하고, 생활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다.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 할 수 있는 공동체도 많다. 서울은 그 좁은 공간에 이 모든 것들이 많고. 이 많음은 경험의 기회에 맞닿아 있다. 바로 이 경험의 기회가 내가 서울이 아닌 제주에서 살기로 결심했을 때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였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집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인 ‘서울수저’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더욱 그랬다.

제주에서의 삶을 택하기에 나에게 가장  장벽은 일자리 부족 문제였다. 내가 계속해왔고 준비해  분야의 일자리가 열악하다는 것이 나를 가장 고민스럽게 했다. 교통의 불편함 정도는 운전을 익히면 상관이 없었고, 친구들의 부재는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익숙해진 페이스캠이 있으니 버틸만했고,  달에 아는 사람 한두  이상은 제주에 방문하기 때문에  문제는 아니었다. 택배가  되는 것이 많은  물욕이 많지 않은 나에게 그리  문제가 아니었고, 문화생활의 공간이 적다는 것은 비행기를 타고 가끔씩 즐기러 가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이 가까운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제주에서 삶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은 어느 정도 돈으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들이었는데, 문제는  돈을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아마 제주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제주에 오지 못하는 가장  이유일 것이다. 다행히  문제는 나의 가장  행운인 우리 부모님이 제주에서 식당을 오픈하시게 되면서 해결이 되었다. 부모님은 나의 인력과 능력이 필요했고, 나는 일자리와 돈이 필요했으니 정말 좋은 타이밍이었다. 부모님 식당에서 월급을 받고 세금을 내며, 프리랜서 일을 구해  쏠쏠한 돈을 벌고 있으니 단순한 일자리의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감사하게도 가장  인간의 숙제인 의식주가 해결되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있는 여유와 선택권이 주어졌고, 나는 다양한 인프라와 내가 해오던 분야에서의 커리어를 쌓을  있는 기회들보다 제주에서 누릴  있는 나의 안식과 나의 평화 그리고 나의 사랑에서 오는 행복감이 나에게  가치 있다는 판단까지 도달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했다.


모든 선택에는 그에 대한 대가와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진리이다.

그에 대한 대가와 책임을 내가 감수할 수 있는가. 가끔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멋지다는 생각도 들고, 주말에 핫플에 간 친구들의 인스타 스토리를  볼 때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다. 그런 지나가는 마음은 재채기처럼 한 번씩 에-취하고 지나가는데, 정말 가끔 호르몬의 변화라던지 생각이 깊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순식간에 내가 서울에서 무언가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이라는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일을 하며 돈을 벌고는 있고, 현재 내 일인 가게가 잘 되도록 하는 일도 감사하게도 잘 이루어지고 있는 중인데, 왜인지 '내 일'은 해내지 못하고 있는 기분. 그럴 때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왜 이곳에 있기로 결심했는지를 다시금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건 내가 꾸려나가며 성취와 그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일을 갖는 것이야.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야. 그건 어쩌면 고립이지만 한 편으로는 자유라고도 할 수 있는 이곳 제주라는 장소가 정말 맞아떨어지는 곳이고. 때문에 나는 그런 삶을 위해 준비하는 중이고, 그래서 더더욱 지금의 상황에 안주해서는 안돼. 더 경험하고, 더 공부하고, 더 시도해 봐야지. 그게 내가 이곳에서의 삶을 선택한 대가이자 책임이야."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면 한편으로는 스물일곱, 서울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에게 참 거창하게도 큰 일이구나 싶어, 으이구 서울촌년 못 말린다 하고는 한다.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살자고 이곳의 삶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를 자꾸 채찍질하게 되는 현실. 그게 또 나구나 싶다. 그만큼 오래 살던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겠지만.


스물일곱, 서울에 있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다.

서울에 있더라도 있지 않더라도 스물일곱은 마냥 안주해서는 안 되는 나이니까..!

스물일곱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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